[기고/김광현]건축설계시장이 부진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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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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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한국 건축설계의 거장인 고 김수근이 설립한 건축설계업체인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의 부도 소식이 충격을 줬다. 건축계에서는 향후 비슷한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는다.

사실 지금 건축설계시장의 부진은 경기 침체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대량으로 신축하던 소비형 사회에서 벗어나 성숙 단계에 접어든 산업 특성 탓이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생기는 현상이다.

부진의 큰 원인은 민간 분양 아파트 등 신축 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지를 싸게 공급받아 분양가를 대폭 낮춘 보금자리주택이 민간주택건설을 크게 위축시키는 데 한몫했다. 이런 현실에서 해결책은 물량을 나누는 것이다. 여러 동으로 된 공공건물 설계도 나눠 발주하고, 아파트 단지도 여러 동을 나눠 설계하게 하자. 그러면 더 많은 건축가가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가 더욱 섬세하게 손댈 수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활성화해 고층 아파트 단지 중심의 주택에서 벗어나게 하고, 부동산 시장을 삶과 환경의 특성으로 바라보게 하는 새로운 주택정책과 이를 위한 건축 법규의 개정이 필요하다.

건축설계 대가를 제대로 받아야 줄어드는 물량을 만회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도 과다한 경쟁으로 설계비용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설계비의 약 15%를 차지하는 현황 측량, 지질 조사 등 추가 업무 비용을 정상적으로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이제는 물가 상승과 무관한 현행 공사비 요율 방식이 아니라, 건축의 난이도와 건축물의 세분된 용도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정상적인 건축설계 대가로 개정해야 할 때다.

물량을 확보하려면 해외시장에도 눈을 돌려야 하지만, 해외는 국내보다 더 험난해서 계약이나 수금이 분명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면 중소기업인 건축사 사무소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건축설계산업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외국 건축가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인 문화도 건축설계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 대규모 공공건축 현상설계가 더 그렇다. 단군 개국 이래 최대 규모라는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 국내 건축가는 완전히 배제됐다. 그래서 이를 발표한 날을 ‘건축 국치일’이라고 한다.

각종 발주방식을 개선하는 것도 건축설계시장을 살리는 지름길이다. 오늘의 건축설계시장의 토대를 균열시킨 가장 큰 주범은 ‘턴키’나 ‘PQ’라는 발주방식이다. 예산을 한 번에 잘 맞추려고 설계와 시공을 일괄하여 입찰하게 하는 턴키방식은 대형 업체만의 리그를 만들었고, 이들을 건설사의 하청업자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일정한 실적이 있어야 받아주는 ‘PQ 제도’도 중소규모 사무소나 신진 건축가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편협된 제도다.

줄어드는 물량에 비해 배출되는 건축학과 학생 수도 이제는 지나치게 많다. 건축학과는 대학마다 있고, 어떤 대학은 정원이 100명, 200명이나 된다. 이래서는 미래에 경쟁력이 없다. 미래의 건축가를 위해 이제 대학은 정원을 대폭 줄이는 아픔을 감내해야 할 때가 되었다.

건축설계는 무수한 공종을 엮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주는 선도적 지식산업이다. 덴마크나 핀란드가 건축설계를 국가산업의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인식 위에서 건축설계 산업을 국가의 중요한 중소기업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이 점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끌 새 정부에 기대한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민간주택건설#보금자리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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