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게임에서 ‘敵’ 제거하듯… 존속살인-폭행… 일그러진 1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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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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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집 안에 불을 질러 일가족 4명을 숨지게 한 사건은 요즘 청소년들의 심리상태는 물론 부모와 자식 간 소통 단절의 현주소를 보여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2일 서울성동경찰서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던 이모 군(13)은 172cm의 키에 76kg의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얼굴에는 아직도 솜털이 뽀송뽀송했다. 이 군의 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는 이 군을 긍정적이고 착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1학년 때 반장으로 선출됐을 정도로 책임감과 리더십이 강했다. 취미로 디지털카메라 반에서 활동했고 춤과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큰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이 군의 아버지가 매일 차로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며 “진로상담 때도 ‘부모님과 큰 갈등은 없었지만 아버지의 기대가 크고 화를 내면 무섭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이 군의 아파트 주민들은 “밤에 큰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말했다.

○ 소통 부재·욕구 좌절 땐 공격 성향

이번 사건은 부모와 자식 간의 기대 수준이 다르고, 갈등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 탓에 끔찍한 사고로 번졌지만 이런 문제는 비단 이 가정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모의 가치관이나 기대수준을 자녀에게 과도하게 바라는 부모와 자유분방하게 자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즘 청소년들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소통이 단절됐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청소년들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친구’와 같은 대등한 관계로 인식하는데 부모나 어른들이 자신을 부당하게 억압한다고 생각하고, 심할 경우 극단적인 공격적 행태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부모를 ‘자신을 학대하고 구박하는 존재 중의 하나’ 정도로 바라보게 되면서 스스럼없이 부모에게도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살해하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는 것.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부모를 컴퓨터 게임에서 자신을 공격해오는 상대방으로 인식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 등 가상 세계 속에서 맺는 부모 자식 관계처럼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 웬만하면 경찰서로 일을 넘긴다”며 “예전에는 따끔하게 훈계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요즘은 교육청에서 두발자율화, 체벌금지 등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가정도 학교도 아이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 사춘기 자녀 폭행은 금물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간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군과 같은 극단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식을 인정하지 않고 부모의 가치관을 주입하는 행동을 피해야 한다는 것.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의 가치를 강제로 주입시키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이 반감만 커질 뿐”이라며 “꾸준한 대화로 신뢰를 회복하되 필요하면 상담소 등을 찾을 것”을 조언했다.

특히 자녀가 사춘기 징후를 보일 때는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하지현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사춘기 청소년들은 충동적일 경우가 많다”며 “청소년 남학생들은 호르몬 분비 변화에 따라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물리적 억압을 하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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