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수개월 동안 “화웨이 거리둬라” 요청…또다시 G2 사이에 낀 韓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3일 19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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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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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월 이후 최소 3개월 간 물밑에서 한국 정부에 중국 화웨이 제품을 도입하지 말라고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올 2월 동맹국들이 화웨이와 거리를 둬 달라고 공개 천명한 이후로 다양한 채널로 이런 취지의 요청이 이어졌다는 것. 미중이 첨단기술 분야를 매개로 ‘신냉전 패권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이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파동에 이어 다시 한번 G2 사이의 샌드위치가 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화웨이 관련 요청을 본격적으로 꺼내기 시작한 분기점은 폼페이오 장관의 2월 21일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 인터뷰였다고 한미 외교가는 보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시 “(화웨이 장비를) 자국의 핵심 정보시스템에 도입하는 나라와는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며 “(도입) 위험성을 안다면 (동맹국들이) 좋은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화웨이와 거리를 둘 것을 우방국들에게 공개 주문했다. 정부 당국자는 “(당시 폼페이오 장관의) 주 타깃은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었지만 그 이후로 (한국 정부에도 비슷한 말을) 해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한미 양국은 (화웨이 및 5G 장비 보안 관련) 이슈에 관해 지속 협의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요청을 수용할 경우 중국의 경제 보복이 불보듯 뻔한 만큼 당국은 대외적으로는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한중 관계가 사드 보복의 충격에서 아직 100% 헤어 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미-중 어디에 치우친 듯한 입장을 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마냥 ‘모르쇠’ 전법을 구사하기엔 워싱턴 정가에서 퍼지고 있는 한국의 ‘중국 경사론’이 부담이란 평가도 나온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한 국무부 전직 고위관계자는 “요새 한국이 친중으로 기울었다는 우려가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번 기회에 한국이 미-중 가운데 선택을 강요받는 흑백론에서 벗어나 나름의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그동안 한미동맹의 분량을 줄여야만 한중관계가 좋아진다는 사고를 적용하다보니 ‘선택’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왔다”며 “한미-한중 관계가 ‘제로섬’이란 개념에서 벗어난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중국은 본격 대비에 나섰다. 23일 런민(人民)일보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22일 장시(江西)성 시찰에서 “국내외 정세의 각종 불리한 요소가 장기적이고 복잡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며 “자주적인 지식재산권과 핵심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하지만 영국 일본 대만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잇따라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화웨이 제품 배제’에 동참했다.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 ARM은 화웨이와의 모든 거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BBC가 22일 보도했다. 일본 전자제품 제조사 파나소닉도 23일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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