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쪽 삭제’ 합의문 보낸 中…美 ‘관세 폭탄’으로 기류 바뀐 이유 알고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5일 16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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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마무리 단계에 근접했던 것으로 알려진 미중 무역 협상이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기류가 바뀐 이유는 중국이 합의문 초안을 45쪽이나 일방적으로 삭제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이 이달 초 무역회담에서 실무적으로 의견을 모았던 7개 분야 150쪽의 합의문 초안을 105쪽으로 줄인 뒤 일방적으로 미국에 보냈다고 15일 보도했다. 중국의 삭제 분량은 전체 초안의 30%에 달한다. 양측이 “10%만 남았다”고 최종 조율을 남겼지만 중국 공산당 강경파들이 저자세로 비치는 대미협상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정상은 상대방에게 밀리지 않겠다며 ‘기싸움’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오전에만 10건의 ‘폭풍 트윗’을 날리며 전의를 다졌다. 그는 트위터에 “우리는 모든 이들이 털어가고 이용하고 싶어 하는 ‘돼지저금통(piggy bank)’이다. 더는 아니다”며 손해 보는 합의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우리가 그들로부터 사는 것보다 훨씬 적게 산다”며 대응조치에 나설 ‘실탄’이 중국보다 많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중국)이 잃고 있으며, 잃게 될 사업을 보완하기 위해 늘 그렇듯이 아마 금리를 낮출 것”이라며 “만약 우리 연준이 이와 필적하는 일을 한다면 ‘게임오버’가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중국은 합의를 원한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되거나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우위에 설 수 있다며 연준의 지원사격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런 분위기에서 중국이 ‘미국 국채 매도’라는 보복카드는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의존하는 국채시장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의 매도로 금리가 급등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관세 대상이 될 수 있는 미국 농가를 돕기 위해 약 150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집안 단속’에도 나섰다. 중국이 6월 1일부터 관세를 올리겠다고 예고한 600억 달러어치 미국산 상품에는 축산물, 냉동 과일, 채소 등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최대 통신장비 기업인 중국 화웨이의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는 파이낸셜타임스 등의 보도도 나왔다.

중국도 적극적인 반격에 나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5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시아문명대화대회에서 “자기 인종과 문명이 우월하다고 여기면서 고집스럽게 다른 문명을 개조하려거나 심지어 다른 문명을 대체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평등과 상호 존중을 견지하고 오만과 편견 버려야 한다”며 미국을 에둘러 비판했다. 관영 중국중앙TV(CCTV)는 13일 저녁 메인 뉴스에서 “중화민족은 5000여 년간 온갖 비바람을 겪었다”며 “싸우자고 하면 끝까지 상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기류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함께 협력하며 세계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가 더 이상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산업계에서 최근 무역전쟁 격화로 양국이 상호의존을 끝내고 결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진다고 14일 보도했다.

뉴욕=박용 특파원parky@donga.com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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