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옥엽 기른 명태… 국민보물로 돌아오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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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실무책임자 서주영 박사 강원 고성군 한해성수산자원센터에서 4년 넘게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주도해오고 있는 서주영 해양수산연구사가 센터 내 어류동에서 최근 3번째 산란을 시작한 1세대 명태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고성=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실무책임자 서주영 박사 강원 고성군 한해성수산자원센터에서 4년 넘게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주도해오고 있는 서주영 해양수산연구사가 센터 내 어류동에서 최근 3번째 산란을 시작한 1세대 명태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고성=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9일 오전 강원 고성군 죽왕면 한해성수산자원센터. 동해 바닷가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의 명태동 컨테이너 건물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산시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싱싱한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서주영 해양수산연구사(42·이학박사)는 매일 수조 탱크에서 양식 중인 명태들을 살핀다. 마치 인큐베이터에 있는 자식을 보듯 물고기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가끔씩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는 명태와도 눈을 맞춘다. 얼마 전 아내와 자녀들이 강릉으로 이사 가면서 서 연구사는 센터 내 관사에서 홀로 살고 있다. 서 연구사에게 명태는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다. 서 연구사는 센터가 2014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는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실질적인 실무 책임자다.

서 연구사는 다른 명태들이 자라는 어류동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자식들’의 상태를 살핀다. 2015년 얻은 인공 1세대 명태들을 기르는 수조 탱크를 들여다보니 50cm 남짓 크기의 명태 한 마리가 바닥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서 연구사는 “수온, 먹이를 최적의 조건으로 만들어줘도 생존율이 5%에 불과한 게 명태다. 폐사할 때마다 내 살이 떨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 연구사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명태동과 어류동을 분주히 오갔다.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와 관련한 기관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일이다. 명태에서 시작해 명태로 끝나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다.


○ “최근 보도 아쉬워… 실패 아닌 가능성 확인”


기자가 센터를 찾은 건 지난 10년 가까이 자취를 감췄던 자연산 명태가 최근 강원도 앞바다에서 2만 마리가량 잡혔다는 기사를 보고서다. 수산 당국이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자연산 명태 어획 소식은 센터의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성과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2016년 강원 고성 앞바다에 방류되기 전 등에 표지가 부착된 인공 1세대 명태. 2017년 2월 강원 양양에서 표지가 달린 38.8cm 크기의 명태 1마리가 발견됐다.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제공
2016년 강원 고성 앞바다에 방류되기 전 등에 표지가 부착된 인공 1세대 명태. 2017년 2월 강원 양양에서 표지가 달린 38.8cm 크기의 명태 1마리가 발견됐다.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제공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센터에서 눈으로 보고 듣고 확인한 것으로 프로젝트의 성과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자연산 명태 어획 관련 기사들은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 참고만 하려고 제목만 훑어봤을 뿐이다.

다수의 최근 기사 제목은 이번에 잡힌 명태가 유전자 분석을 통해 모두 자연산으로 판명이 났고, 그러면 센터가 양식으로 방류했던 명태는 어디로 갔느냐는 의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몇몇 기사에는 ‘명태 미스터리’ 등 센터의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제목이 붙기도 했다. 독자들이야 호기심을 갖겠지만 노력도 하고 고충도 컸을 센터 연구사와 직원들이 보기에는 서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명태동 사무실에서 인공 1세대 명태와 2세대 명태들의 일일 개체수를 확인하던 서 연구사는 최근 보도에 아쉬움을 먼저 표시했다. 서 연구사는 “기사의 ‘팩트’는 맞지만 보도 방향이나 제목은 우리가 프로젝트 성과를 평가하는 관점과 180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성 앞바다에 인공 1세대, 2세대 명태 총 122만6000마리를 방류했다. 이 중 2017년(5월, 12월)에 2세대 30만 마리, 지난해(5·6월, 12월)에 2세대 91만 마리 등 121만 마리가 집중적으로 방류됐다. 2016년 방류한 1세대 명태 1000마리는 확인이 쉽도록 등에 표지를 부착해서 바다에 풀었다.

이 가운데 다시 바다에서 잡힌 건 4마리다. 2016년 6월 강원 속초에서 2마리, 지난해 3월 고성에서 1마리가 잡혔는데, 유전자 검사를 통해 모두 센터에서 방류한 인공 부화 명태로 확인됐다. 2017년 2월에는 표지가 붙은 명태 1마리가 강원 양양에서 잡혔다. 어획 시기로 본다면 2017년과 지난해 방류한 121만 마리를 제외하고, 사실상 이전에 방류한 1만6000마리 중에 포함된 명태인 셈이다.

서 연구사는 “최근 일부 기사에서 ‘방류된 명태로 확인된 개체는 4마리에 불과하다’ ‘총 4마리가 전부다’라고 썼는데 접근이 잘못됐다”고 했다. 서 연구사는 “넓고 넓은 동해에 방류한 명태가 4마리나 확인된 것은 ‘고작’이 아니라 긍정적인 성과다. 잡히지 않은 인공 부화 명태가 많다는 것을 전제로, 어린 명태가 살아남아 드넓은 바다에서 그물에 잡힐 만큼 성장했다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 민감한 명태, 24시간 보금자리 환경 관리

2014년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듬해 자연산 어미 명태의 알에서 부화된 첫 인공 1세대 명태들이 한해성수산자원센터 내 어류동 수조 탱크에서 자라고 있다. 이들 인공 1세대 명태들은 2016년 어미 상태에서 산란을 해 국내 최초로 완전 양식에도 성공했다. 현재 센터에서는 명태 1100여 마리가 살고 있다. 고성=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2014년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듬해 자연산 어미 명태의 알에서 부화된 첫 인공 1세대 명태들이 한해성수산자원센터 내 어류동 수조 탱크에서 자라고 있다. 이들 인공 1세대 명태들은 2016년 어미 상태에서 산란을 해 국내 최초로 완전 양식에도 성공했다. 현재 센터에서는 명태 1100여 마리가 살고 있다. 고성=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서 연구사에게는 작은 명태 치어 한 마리라도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는 기억이 있다. 2015년 1월 30일 새벽, 평소 알고 지내던 어민으로부터 귀한 자연산 암컷 명태를 잡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전해 죽은 암컷 명태에게서 알을 채취해 어렵게 인공 수정을 시켜 명태 치어 9만4000마리를 부화시켰다가 모두 폐사하는 경험을 했던 서 연구사로서는 그만큼 반가운 소식이 없었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크기가 70cm가량 됐는데 배가 불러 있었죠. 어렵게 살려 전년 확보한 자연산 수컷 2마리를 같은 수조에 넣어놨는데 수컷들이 수정을 하려고 암컷을 따라다니더라고요. 제대로 수정이 되겠다 싶었죠.”

2월 암컷과 수컷이 만든 수정란에서 치어 3만 마리를 얻었다. 이 중 1만5000마리를 방류했고 이들이 방류한 명태 122만6000마리의 시초가 됐다. 그 이후로 새벽에 건강한 어미 개체가 잡혔다는 전화만 오면 차에 물을 싣고 주저 없이 항구로 나갔다. 하지만 2015년 1월과는 달리 마음 아픈 기억만 많아졌다.

“어민들 입장에서도 명태 프로젝트가 잘되면 크게 이득을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암컷이 나오면 협조를 잘해 줬죠. 하지만 아무래도 깊은 심해에서 그물에 걸려 올라오다 보니 멀쩡할 리가 있겠어요. 물고기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니 정상일 리가 없죠. 짧게는 당일, 길게는 열흘 살아 있다 죽더라고요.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인공 부화 명태라 할지라도 내 자식처럼 철저하게 보살핀다. 122만6000마리를 방류한 뒤 센터가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용으로 현재 보유하고 있는 명태는 1세대 1100여 마리, 2세대 1500여 마리다.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확보했던 자연산 어미 명태는 203마리. 이 중 현재 2마리만 남아 있다. ‘국산 명태’ 귀환의 명운을 짊어졌던 보물들이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소중하다.

연구사를 포함한 9명의 직원이 교대로 당직을 서면서 어류동과 명태동 수조 탱크들의 상황을 24시간 관리한다. 명태 양식에서 가장 민감한 수온은 오전, 오후 실시간 모니터링해 적절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서 연구사는 휴대전화에 모니터 프로그램을 깔아놓고 건물 밖에 있을 때도 수시로 들여다보고 있다. 겨울철 어종인 명태가 살기에 적합한 물의 최적 온도는 섭씨 8.6도다. 주로 바닷물 표층수를 파이프를 통해 수조로 들여오지만, 온도가 높아지면 저온의 저층수를 들여 수온 조절을 한다. 수온이 설정한 최적 기준 온도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위험 경보가 울린다.

겨울이야 바닷물 표층수의 온도가 평균 9.9도 정도로 낮기 때문에 조절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여름에는 큰일이다. 표층수의 온도가 20도 이상으로 높아진다. 저층수는 물론이고 온도가 더 낮은 수심 60m 아래 심층수를 섞어 적정 수온을 유지시켜야 한다. 예전에는 심층수 공급 업체에서 1일 1200t 정도 구입해 썼으나 지난해 11월 해수취수관 시설을 만든 이후에는 바다에서 직접 심층수를 얻을 수 있게 됐다.


○ 3번째 알 낳는 1세대… 명태 자원 회복 ‘도전’

건강한 자연산 암컷 명태 모체를 계속 얻는 것과 1세대 명태로부터 얻은 개체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것은 센터가 짊어진 숙제다. 최근 2015년에 얻은 1세대들에게서 2017년과 지난해에 이어 3번째로 수정란이 나오고 있다. 명태는 여러 번 산란할 수 있는 어종이다. 1월부터 4월까지가 산란기인데 3, 4월에 산란이 절정에 달한다.

1세대 명태 수조 탱크와 파이프로 연결된 수정란 수집통에는 이들 암컷과 수컷이 만든 수정란이 물을 따라 흘러 모인다. 수정란 알은 수집통 아래 설치된 그물에 걸리고 물은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 수정란은 다시 개별 수조 탱크로 옮겨져 150일이 지나면 부화한다. 서 연구사는 수정란의 상태를 구별하는 방법을 꼼꼼하게 일러줬다.

“보이시죠? 알이라고 다 같은 알이 아닙니다.”

서 연구사는 “같은 수정란이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란은 수면으로 뜨고 죽은 란은 가라앉는다. 2015년산 1세대들이 3번째 낳은 알인데, 알의 질이 방류 명태 수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질 좋은 명태들을 더 많이 키워 방류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국내 명태 자원의 완전 회복 진전과 직결된다. 하지만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주관하면서 ‘명태 아버지’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도 스스로 “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냉정하게 바라봤다.

“같은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수온을 조절하고 먹이를 줘도 명태의 상태가 달라질 때가 많아요. 명태 키우는 가이드라인은 있을지 몰라도 정답은 없습니다.”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언제 성공할 것인지를 단언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건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이제 최소한의 여건과 기반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겨울에 다시 명태잡이가 활성화되고, 어민들이 만족할 만한 소득을 올릴 때가 진정한 명태 자원 회복 시점이라고 봐요.”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지만 성과는 부풀리지 않겠다는 게 그를 비롯한 센터 직원들의 마음가짐이다. 서 연구사는 2016년 자신의 손으로 나흘에 걸쳐 1세대 명태 1000마리의 등에 일일이 표지를 부착했던 경험, 또 자연산 어미로부터 얻은 명태를 키워 제주의 한 해양수족관에 분양해 보낸 경험을 추억처럼 꺼내놓으며 초심을 다졌다.

고성=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명태#한해성수산자원센터#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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