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車협상, 당장 닥칠 피해 막고 불확실한 미래이익 양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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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마무리’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 듣는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개정 협상 초기에는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바에는 차라리 한미 FTA를 깨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강하게 나갔다”고 털어놨다. 김 본부장은 3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재협상으로 한국과 미국은 세 가지씩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개정 협상 초기에는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바에는 차라리 한미 FTA를 깨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강하게 나갔다”고 털어놨다. 김 본부장은 3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재협상으로 한국과 미국은 세 가지씩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상 분야는 평시체제에서 전시체제로 바뀌었다. 자유무역시대가 가고 관리무역시대가 온 것이다.”

올해 1월 이후 9개월 동안 진행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한국 측 대표로 협상을 총괄해온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금 통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국지적인 파도가 아니고 광범위한 조류”라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 주력 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이 변화의 격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진행된 한미 FTA 협상에서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참여하는 등 FTA와 인연이 깊은 김 본부장을 3일 만나 이번 협상 타결의 의의와 한국을 둘러싼 국제통상질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번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시작할 당시 미국 측의 요구사항이 상당히 많았다고 들었다.

“초기에는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바에는 차라리 한미 FTA를 깨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강하게 나갔다. 지난해 9월 4일경 미국으로부터 한미 FTA 폐기 통보가 올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했는데 협상을 시작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협상이라는 것은 항상 끝까지, 벼랑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것이다.”

―협상 안건에 대해서는 어떤 전략으로 나갔나.

“소규모의 실행 가능한 안건만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미국에서 의회 비준 절차 없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안건을 압축했다. 나중에 미국이 요청한 내용을 보니 우리의 레드라인(농축수산물 분야는 재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협상을 시작했다.”

―이번 협상의 득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크게 보면 한국과 미국 모두 3가지씩을 얻었다. 먼저 한국은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ISDS) 소송 남발을 막을 수 있게 됐고, 반덤핑 관세 계산 방법을 미국이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으며, 철강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의 적용을 면제받았다. 미국이 얻은 것은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 시기를 2021년에서 2041년으로 늦춘 것, 미국 자동차 업체가 자국 안전기준에 따라 한국에 수출할 수 있는 차량 대수를 업체당 2만5000대에서 5만 대로 늘린 것, 한국이 자동차 환경기준을 2021년 다시 만들 때 국제적인 추세를 고려하기로 한 것 등이다.”

―이번 합의로, 한국이 앞으로 픽업트럭을 개발해 미국 시장을 공략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지적도 있는데…

“픽업트럭은 현재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제조와 수출을 하지 않는다. 협상에 앞서 우리 자동차 업계로부터 임박한 피해를 없애는 것과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을 얻는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는 전자를 선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임박한 피해라는 것은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부활한다거나 미국산 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도입되는 것 등을 말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자동차와 관련해서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문제가 남아있다. 미국은 이 조항을 근거로 국가 안보를 위해 수입 자동차에 대해 고율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의 자동차에 대한 관세 면제를 요청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무진에 “검토해보라”고 지시해서 낙관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타결되면서 다시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대미 자동차 수출 쿼터를 각각 260만 대씩 받았다. 그렇다면 한국도 그렇게 되느냐는 건데, 우리는 한미 FTA 개정 협상으로 이미 자동차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7월 여야 원내대표들이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을 만나서 이런 뜻을 전달했고,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 총괄수석부회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 측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번 USMCA에는 아주 주목할 만한 조항이 한 가지 있다. 시장경제를 하지 않는 국가와는 FTA를 맺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다. 더구나 USMCA는 16년의 일몰조항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조항이 없다. (미국이) 북핵 문제, 방위비 분담금 등 안보 이슈가 한미 간에 얽혀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서명식 당시에 미국 농수산물 수출도 확대될 거라는 말을 했는데 이건 무슨 뜻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농수산물 추가 개방은 없다. 농수산물에 대해서는 협상 자체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개정 협상이 마무리돼 양국 간 교역량이 늘어나면 농업도 늘어날 거다, 그런 수준의 언급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한 말이라고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에서 미중 무역갈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분야가 대두(大豆), 축산물 등 농축수산물이다.”

―김 본부장이 한미 FTA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수석 변호사로 일할 때였다. 1년에 2, 3개월 정도는 판결문 작성 때문에 새벽 4시에 출근을 했는데 어느 날 새벽 4시 반쯤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당선인이 통상 분야에 대해서만 보고를 못 받았는데, 브리핑 해줄 수 있느냐’는 거였다. 바로 서울로 와서 2시간 동안 보고했다. 동북아시아의 통상 환경은 구한말 신미양요, 병인양요가 일어났던 것과 같은 전시 상황이며, 우리가 먼저 개방과 개혁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김 본부장은 당시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의 통상교섭조정관(1급)으로 발탁됐고 1년 만에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당시만 해도 WTO 회원국 약 150개국 가운데 한국은 몽골과 함께 FTA가 전혀 없는 나라였다. 김 본부장이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추진하며 한국은 미국, 유럽, 중국 등과 협정을 체결하고 FTA의 허브로 거듭났다.

―한미 FTA는 2012년 3월 15일 처음으로 발효됐다. 약 6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긴 안목에서 봤을 때 한미 FTA가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한미 FTA는 우리 민족에 있어서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본다. 2011년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116억 달러였다. 5년 뒤인 2016년에 233억 달러를 기록했다. 흑자뿐 아니라 한미 간 교역량 자체가 늘었다. 간접적으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우리가 교역을 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데 많은 긍정적 요인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캐나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에 대해서도 파상적인 통상 공세를 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세상 물정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지금은 타고난 협상가라는 평가가 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수한 협상가이자 전략가다. 더구나 미국에는 트럼프 대통령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통상정책을 좌우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그의 조상이 조지 워싱턴과 함께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인물로, 자부심이 대단하고 애국심도 강하다. 어렵고 까다로운 인물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USTR 부대표로 있으면서 당시 급부상하던 일본을 상대로 관리무역을 성공시킨 노하우가 있는 인물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중 간 무역갈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미국과 중국은 서로 오판(誤判)을 하고 있다. 그 위에 상호 전략적 불신마저 깔려 있다. 각자가 자신만이 유일한 체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략적 불신의 원인 중 하나다. 미중 간의 무역 분쟁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 “무역갈등에 美도 中수출 막혀… 우리 고급 소비재 팔 기회”

―미국의 계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국은 중국에서 연간 5056억 달러어치를 수입하기 때문에 ‘실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여야를 떠나 미국에서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백인 중산층의 몰락에서 오는 절실함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 파도에 올라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 압박을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발(發) 보호주의 물결은 국지적 파도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조류이다. 우리도 이 점을 잘 이해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역 분쟁이 본격화하기 전 중국 측의 생각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대미 무역흑자만 줄이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중국은 미국의 공세가 자신들의 부상에 대한 견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 기반만을 배경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을 했다.”

―중국은 수치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고, 미국은 교역 규모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교역 상대국이다. 미-중 무역갈등을 둘러싸고 산업계에서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미중 무역갈등의 여파를 쉽게 설명하면,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이 비싸진다는 얘기다. 글로벌 공급망을 바꾸는 데는 1년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사이 우리가 중국 대신 수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우리의 대중 무역 수출 중 70∼80%가 부품과 소재 등 중간재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 우리나라 중간재의 대중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해 대중 수출 품목을 소비재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무역갈등으로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된 고급 소비재 중 우리가 대신 중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해외 기술을 획득하기 위한 인수합병(M&A)을 하기가 어렵지 않겠나. 이 또한 우리에게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미국과 양자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친구라고 부르는 등 개인적인 호감을 보이는 데 대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가장 큰 관심사다. 여기에 미국을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다자(多者)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결국 일본이 이런 미국의 뜻에 양보를 한 것이고, 미국은 양자협상을 해야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임하는 것이다.”

CPTPP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관세 철폐와 경제통합을 목표로 한 경제체제로 일본, 호주 등 11개국이 가입돼 있다. TPP라는 이름으로 2015년 타결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일본이 주도해 CPTPP로 이름을 바꿨다.

―CPTPP에 한국도 가입하나.

“업종별, 품목별 간담회를 해서 모든 분야에서 CPTPP 가입이 미칠 영향에 대한 검토를 마쳤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이 가입하지 않은 CPTPP를 얼마의 입장료를 내고 가입할 건지 신중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를 둘러싼 통상환경이 뿌리부터 바뀌는 것 같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신기술, 신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 분야는 한국이 선도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 그런데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센서가 1000개가 넘는다. 이 센서를 다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퀄컴이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인 NXP를 인수하려 나서지 않았는가. 그래핀(흑연을 원료로 한 소재로 강하면서도 유연하고, 열전도성이 좋아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도 신기술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것 중 하나다. 탄소섬유도 우리 기업들이 추격할 수 있는 유망한 분야다.”

―주력 산업의 업그레이드를 강조했는데, 신기술과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특별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기술 인수합병(M&A)이다.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을 사거나 합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업투자펀드가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우리 돈으로 100조 원에 상당하는 규모의 비전펀드를 조성했다. 한국도 이런 펀드를 여러 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실리콘밸리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필요한 기술을 획득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둘째, 규제 완화다. 스마트헬스를 가정해보자. 지금은 스마트워치가 시계로 분류되지만 맥박이나 혈압, 당뇨 수치 등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의료기기로 분류된다면 새로운 규제 이슈가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런 분야를 선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잘 풀어나가야 한다.”
 
인터뷰=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정리=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미 fta#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미중 무역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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