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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노인체험 5분만에…왜 나이들면 땅만 보고 걷는지 알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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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노인체험 5분만에…왜 나이들면 땅만 보고 걷는지 알게됐다

김윤종 기자 입력 2018-09-02 19:55수정 2018-09-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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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곳곳 낙상 부르는 장애물…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

‘아이언맨’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고글을 쓰자 도로가 뿌옇게 변했다. 시야는 평소의 5~10% 수준으로 줄었고 위 아래를 볼 때에도 크게 목을 움직여야 했다. 몸은 젖은 솜 같았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최소 20㎏짜리 포대를 진 것처럼 무거웠다. 무릎 관절이 잘 구부러지지 않다보니 바닥이 조금만 울퉁불퉁해도 몸의 중심이 흔들려 넘어질 것 같았다. 오토바이가 크게 ‘부릉’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데도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찔한 충돌사고가 날 뻔 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 40대인 기자가 근력과 시각, 청각을 80대 노인 수준으로 저하시키는 ‘노인 유사체험 장비’를 몸에 착용하고 거리를 3시간 동안 돌아다녔다. 신체 기능이 80대 고령자로 저하된 채 걷기 시작하니 금방 땀이 흘러내렸다. 인도 곳곳에 놓인 입간판과 가로수, 전신주 등 장애물은 노인으로 변한 기자를 쓰러트리려 달려드는 ‘괴물’ 같았다. 턱 높은 인도와 짧은 신호등 시간 등도 노인 외출시 부상 위험을 높이는 암초들이다.
노인 장비를 입은 김윤종 기자가 31일 오후 노인에게 불편한 좁은 인도와 장애물이 가득한 서울 종로거리를 힘겹게 걷고 있다.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한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11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해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2025년에는 20%로 초고령사회에 들어갈 전망이다. 심각한 고령화 추세와 달리 노인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과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중교통부터 인도, 공공시설, 건물 등 노인을 다치게 할 위험요소가 곳곳에 널려있다.

실제로 한국 노인 10명 중 1명은 일상 생활 중 낙상 등으로 인한 골절을 겪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로 인한 연간 의료비는 1조 원에 육박했다. 동아일보가 2일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통해 2008~2017년 10년 간 65세 이상 노인 골절환자를 분석한 결과 31만2736명에서 62만5693명으로 2배로 증가했다. 전체 65세 이상 노인의 8.8%에 해당되는 수치다. 특히 뼈가 약한 여성 노인의 골절(약 41만 명)이 남성(약 21만 명)보다 2배 많았다.

고령노인에게 넘어지거나 떨어지는 ‘낙상’은 곧 ‘사망’이다. 서울아산병원 장일영 노년내과 교수는 “낙상으로 인해 입원한 노인의 50% 정도가 수술이 잘 되어도 1년 이내에 사망한다”고 말했다. 노인 골절 관련 진료비 역시 2008년 3137억 원에서 2017년 9015억 원으로 3배 가량 증가했다.

취재팀은 도로와 인도, 공공기관 내 화장실, 대중교통, 운전 등 일상생활 속에서 노인의 안전을 담보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고령 친화 인프라’ 구축을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5회에 걸쳐 분석한다.

노인 장비를 입은 김윤종 기자가 31일 오후 노인에게 불편한 서울 종로거리 표지판를 보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 ‘노인의 속도’로 걸어보니…거리 곳곳이 지뢰밭 ▼


왜 나이가 들면 땅만 보고 걷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달 31일 오후 ‘노인 유사체험 장비’를 온 몸에 장착한 기자가 불과 5분 만에 든 생각이다.
이날 사회복지 디자인 전문가인 전미자 한국복지환경디자인연구소장, 서울시 강효진 디자인개발팀장과 함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주변 도로 일대를 돌아다녔다. 노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로 곳곳의 장애물을 실제로 겪어보고 우리 사회에 걸맞는 ‘노인 친화 인프라’를 찾기 위한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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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人道)의 장애물과 급경사 곳곳에서 넘어짐 유발

두 손목과 발목에 찬 모래주머니와 팔과 무릎에 찬 딱딱한 보호대는 40대인 기자를 80대 노인과 같은 근력 저하 상태로 만들었다. 특수 제작된 조끼를 입자 등은 자연스럽게 7도 가량 굽었다. 노인체험 특수안경을 써 노인 안과질환인 백내장, 녹내장, 황반변성이 생겼을 때와 유사한 상태가 됐다. 앞이 뿌옇게 보이고 시야가 평소의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드니 땅을 보지 않으면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땅바닥을 보고 걷다보니 주변을 둘러볼 수 없었다.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종로 수포로 인도를 걷다 인도 중간에 불쑥 솟은 소방전, 가로수, 상점 가판대 등을 보지 못해 수시로 다리가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지하철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 강철 맨홀도 무심코 딪다가 미끄러졌다. ‘도로의 구조 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보행 가능 인도 폭을 최소 1.2m 이상(가로수 제외)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각종 장애물이 많다보니 1m도 안되는 인도가 태반이었다.

걸으며 쩔쩔 매다가 인도 내 전신주에서 늘어진 전선에 걸려 넘어졌다. 30m 정도를 걷다 또 다시 발목이 꺽였다. 가로수보호 철판은 가운데가 4cm 가량 움푹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깨알 표시석

인도와 이면도로 사이 높은 턱, 낙상의 원인

인도와 이면도로가 만나는 지점의 턱도 큰 곤욕이었다. 인도의 중간부분은 이면도로와의 단차(段差)를 완만하게 해주는 보도블럭이 설치돼 있었지만 인도의 끝부분은 턱부분 즉 연석(보도와 차도의 경계석) 높이가 15~20㎝나 되는 탓에 급경사로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강 팀장은 “안전을 위해 보도의 진행방향에 있는 이면도로와의 단차는 0㎝로 해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기자는 횡단보도를 찾았다. 빨리 건너려 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트럭이 코 앞까지 왔다.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렸지만 노인체험 장비(귀마개)를 하고 있다보니 거리감이 느껴졌다. 전 소장은 “노인에게는 ‘노인의 속도’가 있는데, 그 속도는 도시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한다”며 “그러니 사고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보행 사망자(1675명) 중 노인 사망자는 906명(54.1%)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신호시간은 ‘1초당 1m’가 원칙이다.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많거나 보행밀도가 높은 지역은 ‘1초당 0.8m’로 신호등을 세팅한다. 하지만 노인에게는 이 시간도 너무 짧다. 신호등 앞 노인들을 보니 파란불로 바뀌기 전부터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와 있는 노인들이 많았다.
노인 장비를 입은 김윤종 기자가 31일 오후 노인에게 불편한 좁은 인도와 장애물이 가득한 서울 종로거리를 힘겹게 걷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노인에 맞는 ‘각도’와 ‘높이’ ‘시간’ 재조정해야

종로 일대 공중화장실 중 일부는 좌변식에, 다리 힘이 약한 노인들이 잡고 일어날 안전바도 없었다. 거리에서 만난 노인들은 “우리나라는 사람이고 시설이고 노인을 위한 배려가 없다”고 입을 모앗다. 김모 씨(80)는 “‘나이 들면 집에 있지, 왜 나와서 사고치냐’며 노인을 탓하는 분위기”라고 하소연했다.

2025년이면 노인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노인 친화 인프라 대책은 전무하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 별로 ‘노인 진화 환경’을 만들려는 시도가 전부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선진국은 △인도와 이면도로·횡단보도 턱 없애기 △노인, 휠체어 등을 위한 보행 안전 유효 폭 확대 △노인용 유도블록 설치 △차량 속도저감을 위한 이면도로 바닥 재질과 색 바꾸기 등을 실행하고 있다.

전 소장은 “노인 부상은 개인의 ‘소홀’이 아닌 사회의 ‘소홀’”이라며 “노인에게 적합한 생활 공간 속 ‘각도’와 ‘높이’ ‘시간’ 등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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