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허니문은 끝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8일 21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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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당선된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가 돌아왔다” 다보스선언
노동유연성 살린 노동개혁으로 청년실업 줄이고 기업투자 성공
마이너그룹이 만든 文정부 경제
청년실업-양극화 악화시키면 진보좌파 정부 천추의 恨 될것

김순덕 논설주간
김순덕 논설주간
이제 구름에서 내려올 때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는 자부심에 청와대는 너무 오래 붕 떠 있었다.

작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제천 화재 현장 방문 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숨소리에 울음이 묻어 있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것이 한 증거다. 그러고 한 달 뒤 여당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대구 쪽도 분위기 좋으니 대책 잘 세우면 자유한국당 문을 닫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등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이렇게 오글거리는 참모진을 문 대통령이 준엄하게 꾸짖었다면 27일 밀양 화재 현장에서 “거듭된 참사에 참담하다”고 사과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청와대 주류를 이룬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 86그룹이 그들만의 국정목표에 매달려 대통령을 “우리 이니 하고 싶은대로 해” 같은 방탄막으로 가려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권 인수 기간도 없이 시작한 대통령이지만 집권 8개월이 지났다. 과거 정부가 남긴 ‘적폐’가 산더미라고 해도 국정 성과를 내려면 짧다곤 할 수 없는 기간이다. 글로벌 경제도 좋다. 청와대는 구한말 위정척사파 같은 86그룹에 포획돼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듯하지만 국민의 인내심도 바닥 난 상태다.

24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프랑스가 돌아왔다”고 연설했다. 작년 5월 7일, 문 대통령보다 이틀 앞서 당선된 사람이 마크롱이다. 2004년 30-50(국민소득 3만 달러, 5000만 인구) 클럽, 2008년 40-50클럽까지 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다 강성 노동투쟁까지 겹쳐 다시 3만 달러대로 떨어진 ‘유럽의 병자 국가’를 문 대통령과 똑같은 기간에 완전히 다른 나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마크롱의 연설은 2013년 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연설 “일본이 돌아왔다”를 연상케 한다. 아베노믹스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는 미일동맹부터 확고히 다짐으로써 미국의 협조로 일본 경제를 살려내고, 그 힘으로 ‘보통국가화’ 등 평생의 숙원을 풀어가는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에 페리 제독의 흑선이 나타났을 때부터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세계 최고만을 배움의 대상으로 삼았던 일본의 DNA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마크롱도 마찬가지다. 그는 “프랑스는 국왕 선출을 원하면서도 때로는 시해(弑害)하는 나라”라며 “그럼에도 프랑스를 전진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했다. 정치 지도자는 경제부터 살려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그가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비결이 노동개혁이었다.

“경쟁력을 잃은 일자리를 지킬 순 없다. 그 대신 사람을 지키겠다”는 약속대로 마크롱은 작년 여름 내내 300시간 넘게 노조 지도자들을 설득해 해고는 쉽게 하되 직업훈련과 노동자 보호도 확실히 하는 유연안정성을 얻어냈다. 이미 외신에선 ‘사회주의 프랑스가 창업국가가 됐다’는 기사가 춤춘다. 실업률도 하락 추세다. 작년 9월 세계경제포럼에서 “마크롱의 노동개혁이야말로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이라고 발표된 그대로다.

문 대통령이 청년실업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면 지난주 장관들의 정책 집행 의지를 질책하기 전에 마크롱과 정반대의 정책을 만든 참모들을 질책했어야 했다.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작년 한 인터뷰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공부한 ‘마이너그룹’ 학자들이 정책을 만들었다”며 “한국 사회 양극화, 저성장의 원인을 주류가 제공했고 그래서 우리는 주류의 공격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중간임금의 50%를 넘는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고용을 줄이면서 양극화를 더 벌려놓아 문 정부의 정책 목표와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이 나라의 지배계급은 왜 세계 최고에서 배우기는커녕 나라를 망하게 했던 명분론적 사고와 감상적 민족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프랑스가 개혁에 성공한 ‘열린 사회’의 선두로 나서는데 국왕 시해 비슷한 문화를 지닌 한국은 포퓰리즘에 무너지는 닫힌 사회로 전락할까 두렵다.

문 대통령이 진정 적폐 청산을 원한다면, 그리하여 정의로운 촛불국가를 세우고 싶다면 최고의 정책으로 경제부터 살려내기 바란다. 그래야 그 탄력으로 정권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자칫하다간 “북한이 돌아왔다”고 외칠 판임을 이 정부의 방탄 지지층이던 2030세대도 벌써 알아버렸다. 허니문은 끝났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청년실업 문제#마크롱 대통령#다보스 포럼#프랑스가 돌아왔다#적폐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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