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부활하는 ‘노무현의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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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최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 승진한 구윤철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행정관으로 파견됐던 경제 관료다. 이후 인사제도비서관을 지내고 임기 말엔 국정상황실장까지 겸임했다. 3급 행정관으로 들어가 5년 후 나올 땐 1급을 달았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명박(MB) 정부가 들어서자 찬밥 신세였다.

그나마 워싱턴의 국제기구인 미주개발은행(IDB)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친정인 기재부의 배려였다. 귀국해선 보직이 없는 이른바 ‘인공위성’으로 떠돌았다. 박근혜 정부 때 2급으로 직급을 낮춰 가까스로 기재부 예산실에 복귀할 수 있었다. ‘노무현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 인사에선 TK(대구경북) 출신에게 나라 곳간을 맡겨서 되겠느냐며 견제가 심했다고 한다.

관료로 살아남기 힘든 나라

유재수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도 비슷한 처지였다. 재정경제부 서기관 때 노무현 청와대에 파견돼 대통령제1부속실 행정관으로 노 대통령 수행비서를 맡았다. 김영삼 정부 때 홍재형 경제부총리를 모신 비서관 경력이 도움이 됐던 모양이다. 강원도 동향에 연세대 동문인 이광재 국정상황실장과 친하다는 얘기도 들렸다. 유재수도 MB 정부 땐 워싱턴 세계은행에 이코노미스트로 ‘귀양살이’를 갔다가 귀국 후엔 자리가 없어 국무총리실 등 한직을 전전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얘기가 나올 무렵에야 금융위원회 기획조정관을 맡을 수 있었다.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예산실장과 ‘금융계 꽃’으로 불리는 금융정책국장은 경제 관료라면 누구나 꿈꾸는 엘리트 코스다. 박봉흠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예산실장을 지냈고,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이종구 바른정당 의원은 금융정책국장 출신이다.

구윤철 유재수는 보수 정권에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늦게나마 자리를 찾은 ‘해피엔딩’ 케이스다. 정권교체 때마다 청와대 파견 공무원들은 인사에서 물먹는 게 언제부턴가 법칙처럼 돼버렸다. 보수정권에서도, 진보정권에서도 똑같았다. 정무직도 아닌 비서관, 심지어 행정관마저도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부처에선 일 잘하고 친화력 있는 ‘대표선수’를 청와대로 보낸다. 해당 부처의 얼굴일 뿐 아니라 청와대 소통창구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초기엔 서로 가겠다고 다투지만 대통령 임기 말엔 등을 떠밀어도 손사래 친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엔 지원자가 없어 사무관을 승진시켜 청와대로 보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완장을 찼다가 정권 교체 후 ‘부역자’로 찍힌 선배들을 숱하게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 공무원에 ‘부역자’ 낙인

권력이라는 게 이렇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MB 정부가 들어서자 후배들까지도 죄인 취급하는 점령군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권력에 줄 대며 아첨하는 관료도 없진 않았겠지만 청와대 근무 경력을 이유로 직업 공무원까지 전범(戰犯) 취급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젠 끊을 때도 됐다.

청와대는 지난 정부에서 성과연봉제에 앞장섰거나 새누리당에 파견된 관료 출신 공공기관장을 물갈이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실력도 없이 ‘박근혜 사람’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꿰찼다면 알아서 물러나야겠지만 공공개혁 성과마저 문제 삼으면 공직사회엔 복지부동하는 사람만 살아남을지 모른다. 감사원과 검찰이 총대를 메고 버티는 공공기관장을 몰아내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이젠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구윤철#노무현 정부#유재수#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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