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부형권]돈의 색깔보다 돈의 무게를 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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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경제부 차장
부형권 경제부 차장
“부자 되세요.” 이삿짐 정리를 마치고 이웃에 떡을 돌렸더니 이런 인사가 돌아온다. 돈을 얼마나 벌어야 부자가 되는 걸까. KB금융경영연구소의 2017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공식 부자’로 가는 길은 까마득하다. 예·적금 보험 주식 채권 같은 금융자산만 10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 지난해 기준 24만2000명이고, 국민의 0.47%다.

나머지 국민(99.53%)에서 부자 국민(0.47%)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 청와대 재산공개 대상자 중 최고 자산가(93억1962만 원)인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64)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내가 벌어 모은 돈도 열심히 관리한다는 게 재테크 원칙 1호다.”(청와대 페이스북에서) 장 실장 같은 60대 이상 부자의 80.9%가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 모은 자금으로 생애 최초의 부동산을 구입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런 자수성가형 부자는 50대 70.3%, 40대 이하 62.8%로 줄었다. 그만큼 ‘상속 또는 증여 부자’ 비율이 늘었다. 60대 이상 17.6%, 50대 29.7%, 40대 이하 35.8%. “제 장래희망은 재벌 2세인데요. 아빠가 재벌 되려는 노력을 안 해서 너무 속상해요” 이런 씁쓸한 유머가 회자되는 이유다.

“돈엔 무게가 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돈은 가볍지만, 내가 땀 흘려 번 돈은 무겁다. 무거운 돈을 1000만 원 모을 수 있다면, 1억 원도 만들 수 있다.” ‘가장 성공한 재미 사업가 10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신선도시락 전문업체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53)의 재테크 비법이다. 역시 성공한 재미 사업가인 코스메틱 제조업체 인코코(Incoco)의 박화영 회장(59)은 “어떻게 부자가 됐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쥐똥 얘기로 답한다. “유학생 시절 고급식당 아르바이트 자리를 어렵게 얻었다. 고약한 매니저가 구석구석 떨어져 있는 작은 쥐똥을 청소하라고 했다. 쥐똥을 하나하나 손으로 주우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냐.” 그렇게 번 돈이니 얼마나 무거웠을까.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70)은 가볍게 번 돈 때문에 어이없는 패배를 당했다. 당내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6·버몬트)은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에 대해선 면죄부를 줬지만 월가 대형은행에서 받은 고액 강연료 문제는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미 언론도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클린턴의 1회 강연료(평균 21만 달러·약 2억3730만 원)가 샌더스의 연봉(20만 달러)보다 많다”고 비판했다. 클린턴은 최근에야 잘못을 인정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가 고액 강연은 나쁜 선택이었다. 무조건 피했어야 했다.”

“공직 후보자로서의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주식 투자로 큰 이익을 거둔 과정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결국 낙마한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49)의 사퇴 변이다. 그는 “불법은 없었다”고 했다. 청와대도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인권변호사의 돈은 그만큼 착하게 모아졌을 것’이라고 믿었을 듯싶다. 돈 주인의 색깔(이념적 성향)만 보고 그 돈의 무게(어떻게 벌었는가)는 진지하게 재어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장하성 실장은 “대부분 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데 노동이 신성한 만큼 그 노동으로 벌어서 아껴서 모은 돈도 신성하다”고 말했다. 기자를 포함한 나머지 국민(99.53%)은 부자는 아니지만, 그런 신성한 돈에 대해 시비 걸 만큼 수준이 낮지도 않고, 도덕적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지도 않다.
 
부형권 경제부 차장 bookum90@donga.com
#부자 국민#장하성 실장#돈의 무게#이유정 후보자의 주식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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