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부정한 청탁 없었다”… 120字짜리 짧지만 강한 반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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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영장 청구]

 
특검팀 수사 상황 브리핑 박영수 특별검사팀 이규철 대변인(특검보·왼쪽)이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 청구 및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 브리핑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특검팀 수사 상황 브리핑 박영수 특별검사팀 이규철 대변인(특검보·왼쪽)이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 청구 및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 브리핑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특검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6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브리핑이 끝나고 30분 뒤, 삼성그룹은 120자짜리 공식 입장을 내놨다. 짧지만 강한 유감이 표출된 4개의 문장이었다.

 공식 입장은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일은 결코 없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어 ‘합법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법원에서 잘 판단해 주시리라 믿는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삼성의 이 같은 반응은 비슷한 경우 검찰과 법원을 자극하지 않으려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수준의 코멘트를 발표하는 지금까지의 재계 관행과 크게 다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더 물러날 데가 없는 삼성이 법원에서 제대로 붙어 억울함을 풀어 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이날 삼성 내부에서는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간결하면서도 강한 불만을 담은 공식 입장을 내는 선에서 최종 조율됐다.

 앞서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회의에 참석해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고 담담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삼성그룹 내부에선 ‘혹시나’ 하는 기대가 남아 있었다. 특검이 전날 영장 청구 결정을 하루 미룬 것을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오경 구속영장 청구 소식이 전해지자 삼성 수뇌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긴급 대책 회의를 이어 갔다.

 삼성은 공이 법원으로 넘어간 만큼 남은 시간 동안 영장실질심사에 철저하게 대비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법원이 여론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구속은 명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는 경우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는 근거에서다. 삼성은 특히 이 부회장이 인멸할 증거가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지난해 삼성 사옥을 세 차례나 압수수색했고 관련 증거들은 특검으로 모두 전달됐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진술 번복 논란에 대해서도 삼성 관계자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을 뿐 진술을 바꾼 적은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 부회장은 또 지난해 11월부터 특수본, 국정조사 청문회, 특검까지 세 차례 출석해 증언했다.

 뇌물 수수자로 지목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특검이 아직 서면조사조차 하지 않았는데 기업인만 구속 수사를 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총수에 대한 특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역차별이 있어서도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삼성이 사실상의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함에 따라 연초에 확정돼야 할 투자와 채용 계획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매년 3월 진행하던 상반기(1∼6월) 대졸 신입 공채가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1만4000여 명을 채용한 삼성은 아직까지 올해 신규 채용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 특검 수사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사장단 및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이 줄줄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 맏형 격인 삼성이 채용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면 다른 기업도 줄줄이 영향을 받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4300여 곳의 삼성 협력사도 애를 태우고 있다. 삼성의 경영 차질이 협력사로까지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주요 외신들도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청구 소식을 앞다퉈 전달했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가장 큰 기업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대형 인수합병(M&A)이나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전략적 경영 판단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청구 소식에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일 대비 2.14%(4만 원) 하락한 183만3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10만7367주를 매도하며 주가 하락을 이끌었다. 이날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매도는 최근 3개월 새 최대 규모다.

 일각에서는 2015년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다만 합병 건은 이미 마무리된 만큼 소급 적용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삼성#이재용#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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