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5000개 심장, 한마음으로 봄의 광장을 달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2017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8회 동아마라톤]
풀코스 첫 도전 ‘기부천사’ 가수 션, SNS 모금으로 난치병 어린이 도와
사드 보복에도 서울 찾은 중국인 “한중관계 다시 가까워졌으면…”
한체대 학생들 마사지 봉사도

남녀노소 모두 함께… 축제처럼 즐긴 ‘서울의 봄’ 19일 열린 2017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8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역대 최다인 3만5000명이 서울의 봄을 만끽하며 도심을 가로질렀다. 딸아이와 선글라스를 맞춰 쓴 어머니는 
유모차를 밀고 달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사진 ①). 아디다스가 10km 코스의 페이스메이커로 섭외한 여성 러닝코치들이 
출발선에서 휴대전화 셀카를 찍으며 대회 흥을 돋우고 있다(사진 ②). 프랑스인 참가자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 프랑스 
국기를 휘날리며 결승점으로 들어오고 있다(사진 ③). 어린이 재활병원을 후원하기 위해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 
‘기부천사’ 가수 션(본명 노승환) 씨가 승리를 뜻하는 양손 검지를 치켜들며 골인하고 있다(사진 ④). 변영욱 
cut@donga.com·최혁중·박영대 기자
남녀노소 모두 함께… 축제처럼 즐긴 ‘서울의 봄’ 19일 열린 2017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8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역대 최다인 3만5000명이 서울의 봄을 만끽하며 도심을 가로질렀다. 딸아이와 선글라스를 맞춰 쓴 어머니는 유모차를 밀고 달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사진 ). 아디다스가 10km 코스의 페이스메이커로 섭외한 여성 러닝코치들이 출발선에서 휴대전화 셀카를 찍으며 대회 흥을 돋우고 있다(사진 ). 프랑스인 참가자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 프랑스 국기를 휘날리며 결승점으로 들어오고 있다(사진 ). 어린이 재활병원을 후원하기 위해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 ‘기부천사’ 가수 션(본명 노승환) 씨가 승리를 뜻하는 양손 검지를 치켜들며 골인하고 있다(사진 ④). 변영욱 cut@donga.com·최혁중·박영대 기자
어떤 장애도, 어떤 피부색도 터질 듯한 심장 박동과 아스팔트를 박차는 발을 가로막지 못한 춘삼월의 축제였다. 19일 열린 2017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8회 동아마라톤 참가자들은 출발 1시간 전인 오전 7시경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번 대회에는 역대 최다인 3만5000명이 출전했다.

이날 오전 기온이 영상 4도에 그쳐 전국에서 모여든 상당수 러너는 두꺼운 점퍼를 입고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출발 직전 광장에 운집한 수만 명이 일제히 노래에 맞춰 체조를 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결승선인 송파구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 설치된 마사지 부스는 봄날의 환희를 맛본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 기부천사와 특별한 이가 함께한 서울의 봄

‘기부천사’로 유명한 가수 션(45)은 이날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도전에 나서 3시간 39분 27초에 골인했다. 션은 스터지-베버 증후군(뇌 3차신경 혈관종증) 같은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있는 박은총 군(14) 가족과 함께 뛰었다. 은총 군은 박지훈 씨(43)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풀코스를 완주했다. 션은 이번 대회에 앞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365명으로부터 1만 원씩 모금해 은총이 같은 아이들이 치료받는 어린이재활병원에 기부했다. 션은 “은총이에게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마라톤”이라며 “아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달렸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특별한 이들도 봄날의 열기를 지폈다. 베트남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은 상이군인 출신 김윤근 씨(68)는 휠체어를 타고 42.195km에 도전했다. 다만 김 씨 홀로 다 해낼 수 없어 지난해 한 마라톤대회에서 알게 된 해병대 후배 음길현 씨(63)가 간혹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줬다. 김 씨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머리띠에 태극기 2개를 꽂고 달린 손현복 씨(71)는 “일흔 살 이전까지는 풀코스를 뛰었는데 요즘엔 나이를 생각해 10km로 만족하고 있다”면서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 중국에서 온 ‘고독한’ 러너

국제적인 명성에 걸맞게 여러 나라 ‘손님’으로도 대회가 채워졌다. 아일랜드인 마틴 하인스 씨(41)는 “2010년 한국에 온 이후 동아마라톤만 4번째다. 이제는 동아마라톤을 뛰는 게 일종의 기념일이 됐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한중 갈등 국면에도 중국에서 온 참가자도 있었다. 얼굴에 중국 국기 스티커를 붙인 얀웨이훠 씨(39·여)는 “사드 문제 등으로 중국과 한국이 예전보다 사이가 조금 안 좋은데 앞으로는 다시 더 가까워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에는 각종 단체와 동호회 깃발이 나부꼈다. 수도군단 1175공병단 158대대 소속 군인 65명도 나왔다. ‘블랙러너클럽’이라는 부대 내 동호회 소속인 이들은 교류하는 미군 13명과 함께 운동화 끈을 졸라맸다. 박상준 블랙러너클럽 회장(중위)은 “장병들이 주말에 쉬는 것도 좋지만 가만히 실내에 있지만 말고 밖에서 활력을 찾자는 취지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특한 복장으로 마라톤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본 여고생이 입는 세일러복을 입은 남녀 3명은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머리에 뿔을 달고 뛰거나 조선시대 임금이 입던 곤룡포 차림의 장년 남성도 있었다.

○ 이어진 자원봉사 손길

자원봉사를 나온 청소년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대회를 지켜봤다. 중학교 2학년인 김진서 군(14)은 “마라톤을 마친 사람들이 서로 격려해주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꼭 풀코스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체대 체육학과 학부생 40여 명은 무료로 참가자들에게 마사지를 해줘 인기를 끌었다.

대회 참가자들이 결승선을 통과할 때면 박수가 크게 터져 나왔다. 지인들은 참가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즐거워했다. 대회가 마무리되고 낮 기온이 10도 이상으로 오르자 참가자들은 완연한 봄날을 즐기며 피로를 풀었다. 참가자들은 가지고 온 먹을거리를 올림픽주경기장 인근에서 나눠 먹으며 한바탕 축제를 마무리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신규진·조윤경 기자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광화문#션#중국참가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