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후반 보수-진보 쏠림… 대통령 바뀌면 이념분포 넓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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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성향지수 첫 분석]최근 10년 정권-대법 상관관계

“대부분 50대, 남성,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법관 위주로….”

2014년 1월 차한성 당시 대법관의 후임인 조희대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때 나온 질의다. 대법원 보수성향 획일화를 비판한 내용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50대 남성인 권순일(2014년 9월 임명), 박상옥(2015년 5월), 이기택(2015년 9월) 대법관 후보자의 청문회 때도 이 같은 질문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그러나 본보 분석 결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명을 제청한 10명의 대법관 중 박근혜 정부 들어 임명된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 등 4명의 판결성향지수만 놓고 보면 중도에 가깝거나 오히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 양승태의 신진 대법관, 진보적 ‘스윙보터’로

출신 학교와 나이 탓에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 등 4명의 판결 성향은 실제로는 이런 통념과 큰 차이를 보였다.

전임자와 단순 비교해도 권 대법관은 전임인 양창수 전 대법관보다 무려 15단계나 진보 쪽에 위치해 있었다. 실제 권 대법관은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에게 노조를 허용하고,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를 무효화하는 데 앞장섰다. 박 대법관도 전임 신영철 전 대법관보다 8단계, 이 대법관도 전임 민일영 전 대법관보다 6단계 진보 쪽에 있었다. 조 대법관은 차한성 전 대법관보다 한 단계 더 보수 쪽이었다. 이 4명은 사안에 따라 의견을 같이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보수화된 대법원의 스윙보터(swing voter)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 대법관은 올 2월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병사 5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임 병장 사건’에서 이 대법관과 함께 “(국가의) 병영관리 소홀 탓도 있는데 범행 책임을 피고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사형에 반대했다. 같은 날 선고된 ‘보이스피싱 조직의 대포통장 인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이 4명의 대법관은 나란히 처벌할 수 있다며 소수 의견을 냈다. 다수 의견은 인출을 위해 통장 명의인의 정보를 입력하는 행위는 처벌조항이 규정한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엄격하게 해석한 반면 조 대법관 등은 법 해석을 유연하게 했다.
○ 대통령 바뀔 때마다 대법원 다양성 확대

양 대법원장과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재임 중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바뀌었다. 대통령 교체 시점을 기준으로 각각 전기와 후기로 나눴을 때 대법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전기에 비해 후기의 판결 성향은 다양화되는 공통점을 보였다.

이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진보 쪽으로 스펙트럼이 좁게 모였다가 이명박 대통령 때는 보수-진보 양쪽으로 넓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양 대법원장으로 교체된 뒤 노무현 대통령 때 임명된 김영란 전수안 박시환 이홍훈 김지형 대법관 등 ‘진보 그룹’이 물러나면서 스펙트럼이 보수 쪽으로 좁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다 다시 박근혜 대통령 들어 2, 3년 차 신진 대법관들이 중도 경향을 띠면서 보수 영역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

이에 대해 의사결정 구조상 비슷한 성향의 대법원장-대통령 조합에서 ‘이심전심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 본인이 임명한 대법원장과 임기가 겹칠 때는 대법관의 판결 성향 스펙트럼이 임명권자 성향 쪽으로 좁혀지고, 다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과 있을 때는 스펙트럼이 상대적으로 넓어지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한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이 자기를 임명하지 않은 대통령과 일할 때 다양한 판결이 나온다는 의미로,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분립 또는 인사독립이 대법원의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진보성향의 보수 판결, 보수성향의 진보 판결

임명 때부터 퇴임까지 한결같이 진보, 또는 보수 성향을 보인 대법관은 거의 없었다. 특정 이념 편향적이라고 분류되던 일부 대법관에 대한 고정관념도 사실과 달랐다. 대다수의 대법관들은 시기에 따라 성향이 덜 드러나거나 아예 반대쪽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법원 안팎에서 ‘강경 보수파’로 분류되다가 지난해 퇴임한 신영철 민일영 대법관도 양 대법원장 취임 후 판결 성향이 중도로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 전 대법관은 대법관 임명 전 촛불재판 개입 논란에서, 민 전 대법관은 재임 시절 ‘안기부 X파일’ 사건, ‘제주해군기지 승인 취소’ 사건의 주심을 맡아 보수적인 판결을 이끌었다는 이유 등으로 전형적인 보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신 전 대법관과 민 전 대법관은 각각 보수 쪽에서 11, 12위로 열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했다. 대법원장 교체기에 재임하던 대법관 11명 중 9명이 ‘우클릭’했지만 두 사람만 중도 쪽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

전원합의체 사건을 형사, 민사, 특별(행정 및 특허) 사건 3가지로 나눠 분석한 결과 대표적 진보 그룹으로 분류된 김영란 전수안 박시환 이홍훈 김지형 전 대법관은 형사사건에서 진보성향(1, 2, 3, 5, 6위)이 뚜렷했지만 민사에서는 이합 집산했고, 행정사건에서는 오히려 보수적인 색채(1, 2, 3, 4, 8위)를 보였다. 5명이 함께 참여했던 판결 65건 중 24건에서 의견이 갈렸는데 노동, 여성, 경제 질서, 인권 등 분야에서 각자의 법 해석이 달랐다.

신동진 shine@donga.com·권오혁 기자
#대법원#대법관#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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