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출장자 주변 2m內 승객만 격리대상… “당국 소극적 대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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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메르스 방역]
하루새 5명… 확진 12명으로 늘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으로 출장을 떠난 의심환자가 감염자로 29일 최종 판명되면서 메르스가 중국으로까지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날 국내에서 4명이 감염자로 추가 확인돼 메르스 감염자는 모두 12명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동시에 메르스 확산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지만 현재도 질병관리본부의 △격리 기준 △검사 기준 △접촉자 파악 등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 “메르스 중국 전파” 오명 우려

이날 보건복지부는 국내 세 번째 메르스 감염자인 C 씨(76)의 아들로 26일 홍콩을 거쳐 광둥(廣東) 성으로 출장을 떠났던 H 씨(44)가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현재 H 씨는 발열 증세를 보여 광둥 성 후이저우(惠州) 시의 공공 의료기관에 격리된 채 치료를 받고 있다. H 씨로 인한 메르스 감염자가 중국에서 발생하면 한국은 ‘메르스 전파국’이란 오명을 피하기 힘들다. 중동지역 국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고, 보건당국의 초기 대응도 부실했기 때문이다.

H 씨 외에도 국내 첫 번째 메르스 환자인 A 씨(68)와 접촉했던 간호사 I 씨(46), A 씨와 같은 병동에 있었던 환자 J 씨(56), K 씨(79), L 씨 (49) 등 4명의 감염자가 추가로 확인됐다. 또 격리 관찰자도 총 127명으로 늘어났다.

○ 비행기 탑승객 격리기준 너무 소극적

가장 우려되는 건 H 씨가 중국 출장길에 탔던 비행기 탑승객 중에서 감염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당시에도 H 씨는 발열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비행기 내부는 사람들이 밀접해 앉아 있고, 환기도 잘되지 않는 공간이라 바이러스가 잘 퍼질 수 있는 조건이다. 김성한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비행기에 탔을 때 발열 증세가 있었다면 비행기에서 가까이 앉았던 사람들이나 접촉한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H 씨가 탔던 비행기 탑승객 163명(내국인 85명, 외국인 78명) 중 2m 이내 위치에 앉았던 승객 20명과 승무원 6명 등 26명만을 밀접 접촉자로 설정해 귀국하는 대로 격리 관찰하기로 했다.

전병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최초 감염자와 단순히 같은 병동에 있었던 사람 중에서도 감염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2m 이내 승객만 격리 대상으로 삼는 건 적절치 않다”며 “같은 비행기를 탔고 다시 국내에 들어오는 이들은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 안이한 대응, 부실한 조사, 느슨한 검사기준


H 씨가 ‘숨겨진 인물’이었다는 사실도 심각한 문제다. 국내 세 번째 감염자의 직계가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건 초기 역학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H 씨는 16일 A 씨와 C 씨가 있던 병실에 4시간이나 머물렀다.

26일 1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왔지만 28일 다시 검사했을 땐 메르스 양성 반응을 보인 I 씨 사례도 결과적으로 보건당국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이미 음성 판정을 받은 격리 대상자들 중에서도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격리 대상자 중 발열 등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에만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는 것 역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안이한 대처라고 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안이한 대응은 6번째 감염자 F 씨(71)를 파악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A 씨와 같은 병동에 입원해 있던 F 씨가 또 다른 대학병원으로 갔을 때 담당 의사가 질병관리본부에 연락해 환자 증세를 설명하며 메르스를 의심하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일반 병실로 받으라’고 지시했다는 것. 그러나 이 환자는 확진 판정을 받았다.

○ 중국 내 메르스 우려 확산

한편 홍콩 언론은 H 씨가 홍콩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열이 있고 기침을 해 간호사가 메르스 환자와 접촉했는지, 메르스 환자가 있는 의료 시설에 갔는지 등을 물었지만 그가 모두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29일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따르면 홍콩 보건당국은 H 씨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음에 따라 비행기에서 그의 주변에 앉았던 한국인 승객 3명을 이날 격리해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3명에게서는 검진 전 이상 증세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보건당국은 H 씨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200명에 대한 추적 조사를 하고 있으며 홍콩행 비행기에서 주변에 앉았던 승객 30명가량을 격리시킬 예정이다. 또 H 씨와 같은 항공기를 타고 홍콩으로 들어온 중년 홍콩 여성도 이날 정오 메르스 감염 증상을 보여 병원 전염병센터로 이송돼 검사를 받고 있다.

이세형 turtle@donga.com·김수연·김배중 기자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메르스#방역#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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