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4]동화 ‘사과에 구멍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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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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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당선작
공문정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그림대회가 얼마 안 남았네요. 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준비해 보아요.”

선생님이 과일 바구니를 꺼내며 말했어요. 과일 바구니에는 사과와 포도, 배, 참외가 담겨 있었지요.

‘휴우’ 선하는 한숨이 나요.

“지혜도 상을 탔다는데…… 이번에는 우리 아들도 꼭 타야지?”

집에서 나올 때 엄마가 한 말이 자꾸 떠올라요.

“어휴, 또 그림대회야…….”

선하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숨을 쉬었어요.

유치원에 미술특기반이 생겼을 때는 신이 났어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요. 하지만 그림대회에 나가면서부터 달라졌어요.

민수가 상을 타고, 찬영이도 타고, 옆집에 사는 지혜까지 상을 타자 선생님과 엄마는 그림대회 이야기만 꺼내요. 선하는 과일 바구니 안에 있는 사과, 포도, 배, 참외를 물끄러미 보았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손이 움직여지지 않아요. 누군가 손을 묶어 놓은 것처럼 꼼짝 할 수가 없어요. 손가락이 마법에 걸렸나 봐요.

“선하야 뭐 하니? 어서 그려야지!”

선생님이 선하의 어깨를 살짝 치며 재촉했어요. 선하는 몸을 움츠리며 친구들을 둘러봤지요. 모두들 쓱쓱, 잘도 그리고 있어요. 지혜는 벌써 물감과 붓까지 꺼내 옆에다 두었지요.

‘어디서부터 그리지?’

선하는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사과부터 그릴까?’

눈을 커다랗게 뜨고 사과를 뚫어질 듯 자세히 들여다보았어요.

“앗!”

선하는 놀라고 말았어요. 사과에 구멍이 하나 콕 뚫려 있었기 때문이에요. 선하는 사과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구멍 속을 들여다봤어요.

“그림 안 그리고 뭐 해?”

옆에 앉은 지혜가 물었어요.

“지혜야, 사과에 나 있는 구멍 봤어?”

선하의 말에 지혜는 픽 웃을 뿐이에요.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거야. 사과 그림에 구멍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지혜의 당당한 말에 선하는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어요.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그림을 그렸지요. 그때였어요. 사과의 구멍 속에서 애벌레 한 마리가 꼼지락거리며 밖으로 나오고 있었지요.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간신히 사과를 빠져나온 애벌레는 곧장 선하 앞으로 기어왔어요. 그리고 선하에게 말을 걸었지요.

“사과를 그려 보고 싶니?”

애벌레가 묻자 선하는 너무나 놀라 꿈쩍 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도와줄까?”

애벌레가 다시 말했어요.

“응!”

선하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어요.

“먼저 사과나무를 그려봐!”

“뭐? 사과나무를 그리라고?”

선하가 너무 큰소리로 말했나 봐요. 지혜가 깜짝 놀라며 물었어요.

“누구한테 말한 거야?”

“애벌레!”

“뭐? 애벌레?”

“아냐, 아무것도 아냐!”

선하는 손사래까지 치며 아니라고 했어요.

“어휴, 이선하! 언제 다 그릴래? 빨리빨리 좀 해라!”

지혜는 마치 누나라도 되는 것처럼 선하를 내려다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어요. 지혜의 말에 속상한 선하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그때 몸통을 세우고 조용히 기다리는 애벌레와 눈이 마주쳤죠.

“여기에 사과나무를 그릴게.”

선하는 조용히 속삭이며, 도화지 위에 나무 한 그루를 그렸어요.

“사과나무가 왜 이래? 너무 굵고 뚱뚱하잖아!”

애벌레의 말에 선하의 얼굴은 사과처럼 빨개졌어요.

“나는 진짜 사과나무를 본 적이 없어!”

“뭐라고? 사과를 먹으면서 사과나무는 본 적이 없다고? 그건 사과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저기 사과 속 구멍을 잘 들여다봐!”

선하는 어깨를 낮추고 사과 쪽으로 가까이 눈을 댔어요. 그러고는 아까 애벌레가 기어 나온 검은 구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지요. 구멍 사이로 들판이 보이더니 비탈진 언덕 한가운데 나무가 보였어요. 바로 사과나무였어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선하는 그것이 사과나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지요.

선하는 사과나무를 제법 그럴듯하게 그렸어요.

“어때? 정말 사과나무 같지?”

선하가 종이 위에 그려진 사과나무를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자 애벌레도 칭찬해 주었어요.

“잘했어! 그런데 사과를 열리게 하려면 해, 해님이 있어야 해!”

“해님을 그리라고?”

“그럼 나무는 햇볕을 쬐어야 잘 살아가지.”

“아, 맞다!”

고개를 끄덕이며 선하는 오른쪽 하늘에 해를 그렸어요. 애벌레는 해님을 보고 만족한 듯 환하게 웃었어요. 정말 애벌레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칼칼칼 웃었지요.

“햇볕은 정말 따뜻해! 나무도 기분 좋을 거야!”

애벌레의 말에 선하는 사과나무를 보았어요. 그림 속의 사과나무는 그사이에 벌써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지요.

“와! 예쁘다!”

선하가 신이 나서 외치자, 애벌레도 웃으며 말했어요.

“자세히 봐! 사과꽃도 처음 보는 거잖아!”

선하는 그림 속의 사과꽃도 자세히 들여다보았어요. 하얀 꽃은 하얀 나비 같고, 분홍 꽃은 분홍 나비 같았지요. 앗! 정말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꽃 위에 나비가 앉아 있었어요.

“하얀 나비는 이선하, 분홍 나비는 애벌레. 우리는 친구야.”

선하가 말하자, 애벌레는 다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칼칼칼 웃었어요. 선하도 애벌레를 보며 킥킥킥 웃었지요. 선하와 애벌레의 웃음소리에 깜짝 놀란 나비들이 팔랑팔랑 날아올라 다른 꽃잎으로 옮겨 앉았어요. 잠시 후 살랑살랑 꽃잎이 떨어지더니, 그 자리에서 작은 연둣빛 열매가 반짝반짝 달리기 시작했어요.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어요!

한참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대롱대롱 달린 사과가 시들해지고 잎사귀는 힘없이 처지네요.

“왜 이러지? 애벌레야, 왜 사과나무가 힘이 없어?”

선하는 사과나무가 시들시들 말라가자 슬퍼졌어요.

“목말라서 그래. 그동안 하늘에서 비가 안 내렸잖아.”

“비를 그려줄까?”

“응.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내리게 하는 거야!”

“알았어!”

선하는 커다란 먹구름을 두둥실 그렸어요. 구름 안을 어두운 색으로 칠할수록 구름은 두껍고 무거워졌어요. 그러자 주룩주룩 비가 내렸지요. 빗방울은 나뭇가지 위에도 내리고, 사과 위에도 내리고, 애벌레 위에도 내렸어요. 빗방울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사과나무 뿌리까지 적셨어요. 나무에 달린 사과는 다시 빨갛게 윤이 나고 잎사귀는 반짝반짝거렸지요.

“쩝! 맛있겠다!”

애벌레가 탐스럽게 열린 사과를 보며 말했어요. 선하는 애벌레를 보며 씨익 웃었지요.

“내가 사과를 따 줄게. 기다려 봐!”

선하는 크게 숨을 들이쉰 다음에 입술을 모아 ‘푸우푸우 후우우’ 사과나무에 바람을 불어넣었어요. 가지에 달려있던 사과가 흔들리더니 뚝! 땅으로 떨어졌어요. 애벌레는 떨어진 사과 앞으로 꿈틀꿈틀 기어갔어요. 그러고는 야금야금, 사과 속으로 구멍을 만들며 들어갔지요. 잠시 후, 얼마나 먹었던지 애벌레는 ‘꺼억’ 트림을 하며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어요.

“사과가 진짜 맛있다! 고마워. 선하야!”

“애벌레야, 나도 고마워.”

선하와 애벌레는 서로를 보며 환히 웃었어요.

배부른 애벌레가 아함, 하품을 하네요.

“난 이만 잘게. 사과나무도 피곤할 거야. 깜깜한 밤이 필요해!”

“알았어! 밤을 그려줄게.”

선하는 검은 물감을 꺼내 까맣게 색칠했어요. 해님도 자고, 구름도 자고, 빗방울도 자고, 나무도 자고, 사과도 자고, 애벌레도 자고 모두모두 쿨쿨 잠을 자는 밤이 되었어요.

“어머나! 이선하! 지금 뭘 그린 거니?”

선생님이 새까만 선하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어요. 친구들도 모두 선하의 그림을 들여다보았죠. 하지만 선하는 자기 그림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림을 자세히 보니 깜깜한 어둠 속에서 새근새근 잠자는 사과나무가 보이고 빨갛게 빛나는 사과들도 보여요. 그리고 구멍이 있는 어떤 사과에는 애벌레가 쿨쿨 잠을 자고 있어요.

쉿! 그건 선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에요!
        
● 당선소감
아이들 웃는 모습 생각하니 두근두근


공문정 씨
공문정 씨
어렸을 때부터 책을 참 좋아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으로 곧장 달려가 신나게 책을 읽었습니다. 동화책을 읽을 때마다 즐거움이 솟아났습니다. 덩달아 책을 쓰는 작가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이야기로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웃는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했습니다. 동화를 배우고, 습작을 하면서 즐거웠지만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이 항상 어려웠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접하고, 저는 따뜻한 격려를 받은 기분이 듭니다.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이렇게 말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부족한 글을 예쁘게 봐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써서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동화작가가 되겠습니다. 언제나 저를 믿어주시는 부모님 감사합니다. 우리 복덩이 박찬이! 네가 태어난 해에 좋은 일이 생겼구나. 나의 첫 독자이자 듬직한 남편, 박중서 씨 고마워요. 열렬한 합평과 응원으로 함께해 온 글동무 ‘거미 똥구멍’과 ‘늴리리’ 영원히 함께해요. 끝으로 제가 많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김리리 선생님 감사합니다.

△1982년 서울 출생 △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심사평
이미지 연상되는 장면들 유쾌한 뒷맛


김경연 씨(왼쪽)와 황선미 씨
김경연 씨(왼쪽)와 황선미 씨
응모작 225편 중에서 본심에 오른 작품은 5편이었다. 모두 소재나 상상력에서 나름의 미덕을 갖췄으나 완성작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 심사에 어려움이 컸다.

박창환의 ‘손’은 도입부의 사건과 인물 배치가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후반부의 문제 해결이 설명적이고 갑작스러워 설득력이 떨어졌다. 전은숙의 ‘선생님께’는 요즘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문제를 풍자의 방식으로 접근한 점이 흥미로웠다. 문제의식이 가장 돋보였던 작품이나 그저 고발에 그쳐 아쉬움이 크다. 장재옥의 ‘자전거를 타고 미사리 한 바퀴’는 순수한 아이 마음을 따라가는 묘사가 좋았지만 서사가 너무 단조로워 이성에 대한 감정 표현에 극적 구성이 얼마라도 필요해 보였다. 허윤정의 ‘마지막이 온다’는 지구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아이 시선에서 다루고 있는데 서사의 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진부한 결론이라 안타까웠다.

‘사과에 구멍이 있어요!’에도 결함은 있었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평가에 따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강요된 교육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아이다운 상상력을 기반으로 서사를 진행했고, 이미지로 연상되는 장면들이 여운을 남겼다.

김경연 아동문학평론가·황선미 동화작가
#동화#사과에 구멍이 있어요!#공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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