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또 잿더미 만들건가”, “도발은 그만, 평화의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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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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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 악몽’ 연평도 중고교생들이 北에 전하는 메시지

“18…년을 공부했다. 보잘것없는 이기심으로…. 서울대 간다. 쏘지 마라.”

“도발은 이제 그만! 연평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어 주세요.”

12일 오후 인천 연평고등학교(교장 김병문) 도서실. 휴식시간을 이용해 학생들이 북한에 전하는 메시지를 스케치북에 적어 내려갔다. 학생들은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때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휴식시간 중간 중간에 북한에 전하고 싶은 글을 진솔하게 썼다.

방혜정 양(16·1학년)은 ‘연평도 포격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가족과 잠시 동안 헤어지게 한 북한이 너무 한심하고 싫다! 전쟁 없고 무력도발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메시지를 적은 뒤 기자에게 “아저씨가 제 글을 꼭 북한에 전달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올해 고교 3학년이 된 장현지 양(18)은 “중학교 3학년 때 당한 북한 포격도발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면서 치가 떨린다”고 했다. 북한군의 포격으로 집을 잃은 장 양은 ‘폭격소리가 아니라 평화의 소리를 듣고 싶다’는 메시지를 썼다.

장 양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 언론사 인터뷰를 피했다며 북한의 포격도발 당시를 설명했다. “수업시간인데 포탄이 쉴 새 없이 하늘에서 날아와 면사무소 주변에 떨어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해병대가 훈련을 하는 줄 알았는데 동네에서 불길이 치솟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전쟁이 난 줄 알았어요.”

장 양은 황급히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친구들과 대피소로 뛰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군무원인 아버지를 제외한 온 가족이 해군 함정을 타고 인천으로 피신했다. 찜질방을 거쳐 경기 김포의 임대아파트 생활을 마친 뒤 연평도에 돌아와 보니 집은 북한군의 포격으로 잿더미가 된 사실을 알았다.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예쁘게 꾸며준 내 방도 있었는데 형체도 없이 사라진 모습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고교 1학년 김규진 군(16)은 아름다웠던 연평도의 산이 북한군의 포격으로 벌거숭이산으로 변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김 군은 북한에 전하는 메시지에 ‘연평도의 불탄 산이 너무너무 불쌍하다’고 적었다. 김 군은 “우리의 놀이터이자 숲이 울창해 다양한 새들이 날아오던 까치산이 북한군의 포격으로 모두 불에 타 흉물이 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른이 되면 숲을 볼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아직도 북한 포격도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고 있었다. ‘갈 곳 없는 갈매기 꿈을 잃은 우리들’이란 메시지를 적은 1학년 방지은 양(16)은 “지금도 굉음을 들으면 깜짝깜짝 놀라고 샤워를 할 때 울리는 소리가 무서워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다”고 말했다.

집이 불에 타 6개월 전 새집에 입주했다는 박명환 군(16)도 “북한군이 쏜 포탄에 맞아 잿더미가 된 집을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는데 막상 새집에 입주한 뒤 예전 집과 다른 어색함 때문에 잠이 잘 안 온다”고 했다. 연평고는 2013학년도 대학입시에서 군입대자 등을 제외한 고3 수험생 7명이 모두 대학 입학의 꿈을 이뤘다.

연평도=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포격#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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