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의 공정한 이미지]청와대사진기자들이 난동을 부렸다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일 17시 30분


코멘트
미국을 공식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에 도착 트럼프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 공식 정상회담은 취재진들이 철수한 후 이뤄진다. 이 장면은 취재진에게 잠시 공개되는 순간에 촬영한 것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단/동아일보 원대연기자)
미국을 공식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에 도착 트럼프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 공식 정상회담은 취재진들이 철수한 후 이뤄진다. 이 장면은 취재진에게 잠시 공개되는 순간에 촬영한 것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단/동아일보 원대연기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달 30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사진을 찍으면서 기자들에게 큰 소리를 내는 장면에 ‘한국 기자들이 난동을 벌였다’는 미국 기자들의 SNS 글까지 붙으면서 현장 상황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 신문은 “Trump scolds Korean media for wreaking havoc in Oval Office”라는 제목을 뽑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의 첫 회담장에서 일어난 ‘소란’이 한국 기자들, 그 중에 청와대 기자들을 욕하는 근거가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현장에 있었던 한국 기자들이 창피한 일을 했다는 근거도 빈약하다. 현장을 지켜 본 동아일보 사진부 소속 청와대출입기자는 ‘난동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다. 한쪽 면만 본 보도다’고 미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타기 전 카톡을 통해 전해왔다. 현장을 다녀온 사람에게 쓰라고 할까 하다 더 논쟁이 번지기 전에,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는 출장자에게 쓰라는 게 무리라는 생각에 전직 출입기자로서 한마디 보태고자 한다.

청와대를 출입하고 한미 정상회담을 취재했던 동아일보 사진기자들은 이 상황을 대체로 한미 취재진들이 경쟁적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뉴스 현장이자 세계 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은 생각보다 좁다. 그야말로 집무실이기 때문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양국의 정상이 이야기를 나누다 문이 열리면 취재단이 들어가 2~3분간 촬영한다. 밀려든 취재진 앞에서 양국 정상은 ‘우아하게’ 악수를 나누고 가벼운 환담을 한다. 그 짧은 순간 양국 정상의 맞은 편 풍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취재진과 보좌진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앉고, 서고, 무릎 꿇은 채 2~3분간의 공개 행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오벌 오피스에서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오벌 오피스에서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동아일보 DB

물론 이번 순방 기자단의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 앞에 취재진의 숫자는 풀 취재 인원만 있었으므로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재기자, 사진기자, 방송카메라기자, 오디오맨 포함 총 11명의 한국 국적 기자단이 현장에 들어갔다. 이에 비해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총 인원수는 22명이 넘었다는 게 현장 기자들의 어림치다. 미국 풀(POOL: 공동취재단)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숫자였던 것이다.

미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미국 본토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취재의 우선권을 보장받는다. UN 총회에서 만났던 백악관 기자들은 왜 줄을 서지 않느냐는 질문에 ‘Priority(우선권)’라고 당당히 얘기하고 옆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경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한국 대통령들과의 양자 회담에서도 항상 한미 취재진의 경쟁은 불가피했다. 한국 기자들 입장에서는 반드시 찍어야 하는 사진이 있는데 그게 대체로 화면 가운데 서야 가능한 사진이다.

청와대를 찾는 외국 기자단 대표들에게 한국 기자들이 만약 먼저 자리를 잡고 사이드 쪽에 알아서 자리를 잡도록 한다면 그건 동업자 정신이 없는 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통상적으로는 미국 한 명, 한국 한 명, 미국 한 명, 한국 한 명…. (one by one)이렇게 회담장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방식이 공정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누군가의 “자, 가지죠”라는 싸인에 경쟁적으로 회의장으로 뛰어 들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길을 잘 모르는 외국 기자들은 우왕좌왕한다.

몇 년 전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국 방송 카메라 기자의 머리에서 피가 난 경우도 있었다. 요행히 정 가운데 자리를 잡았지만 위쪽에서 미국 기자의 카메라가 누르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실내에서 벌어지는 양국 정상 회담에서 가운데 자리를 두고 벌어진 해프닝이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 취재진은 조용히 상황을 마무리하고 귀국했다. 취재진간의 문제로 인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외교적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벌오피스
오벌오피스

홈그라운드에서 무한 경쟁을 해야 했던 상황에 대해 미국 기자들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양국 모두 정권 초반이므로 취재진간의 프로토콜 합의가 잘 안된 점을 고려한다면 쌍방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을 외국 기자들에게 화를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 그게 강한 나라의 지도자의 격에 맞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트럼프가 기자들을 향해 “진정해 친구들” 정도의 뉘앙스인 “fellas, easy”라고 한 것을 한국 기자들을 꾸짖었다고 이해해도 될까?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미디어와 기자들이 그걸 강조해서 뉴스로 만들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객관적이어야 할 기자들이 나라 걱정하는 게 옳은 태도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국이 미국이었다는 점은 취재진들을 많이 긴장하게 했다. 한미간에 풀어야 할 숙제와 협력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출국 며칠 전 저녁자리에서 만났던 사진기자들 대부분은 긴장 상태였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 중 사진이나 영상 기자들은 대체로 20년 이상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지켜야할 프로토콜에 대해 민감하고 외교 현장에서 조심한다. 천만 원이 넘는 출장비를 들여서 가면서 다짐이 없을 수가 없다. 우리 대통령이 제대로된 의전을 제공 받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사회가 원하는 사진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백악관 기자가 찍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과 한국 기자가 찍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같을 수 없다는 게 사진기자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불과 2,3분 남짓의 짧은 촬영이 끝난 후 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는 일이 다반사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난동’이라는 표현은 현실과 안 맞는다.

변영욱 기자cut@donga.com
#백악관#오벌오피스#한미정상회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