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옆 사진관]정치인이 왜 유니폼을 입고 축구장에 들어가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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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축구센터 내에서 유세활동을 하는 황 교안 자유한국당대표와 4·3 재·보궐 선거 창원 성산구 강기윤 후보.(자유한국당 홈페이지)2019.3.31/뉴스1
창원 축구센터 내에서 유세활동을 하는 황 교안 자유한국당대표와 4·3 재·보궐 선거 창원 성산구 강기윤 후보.(자유한국당 홈페이지)2019.3.31/뉴스1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재보궐 선거 유세 지원을 위해 3월 30일 경남FC와 대구FC의 경기가 열린 경남 창원 축구센터를 방문했다. 이 지역에 출마한 강기윤 후보와 관중석 안으로 들어가 시민들에게 인사를 했는데 ‘자유한국당’ 당명과 기호 2번이 선명한 붉은 점퍼를 입은 게 화근이었다.

선거법 위반은 아니지만 축구계의 관행에는 배치되는 행동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는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원칙에 따라 ‘경기장내 선거운동 관련 지침’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경기장 안에서 정당이나 후보의 이름, 기호가 노출된 의상을 착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를 어기면 홈팀이 10점 이상의 승점을 뺏기거나 2천만원 이상의 제재금을 내야한다.

경남 FC는 승점 감점과 제재금의 징계가 우려된다며 자유한국당에 공식 사과와 법적인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무심결에 입고 다닌 정당 유니폼이 체육계와 팬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 것이다.

정치인들이 왜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지 언제부터 이런 식의 선거운동이 생겼는지 한번 알아봤다.

1992년 12월제 14대 대통령령 선거전이 막판에 접어들면서 각 당은 넥타이, 볼펜, 점퍼 등을 유권자들에게 뿌리며 금권선거운동을 펼쳤다. 중앙선관위가 압수한 오리털 파크에 국민당 마크가 새겨져 있다. /동아일보 DB
1992년 12월제 14대 대통령령 선거전이 막판에 접어들면서 각 당은 넥타이, 볼펜, 점퍼 등을 유권자들에게 뿌리며 금권선거운동을 펼쳤다. 중앙선관위가 압수한 오리털 파크에 국민당 마크가 새겨져 있다. /동아일보 DB

한국 정치에서 점퍼가 처음 동원된 것은 최소한 1992년 12월 이전이다. 14대 대통령 선거전이 막판에 접어들면서 민자, 민주, 국민 등 3당은 타당에서 뿌리고 있는 각종 금품을 증거물로 제시했다. 이 때 국민당이 유권자들에게 뿌린 것으로 추정되는 오리털 파카를 다른 당 관계자들이 폭로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1992년에 등장했던 오리털 파커가 정치인들의 유니폼처럼 사용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은 전통적으로 양복을 입어왔고 설령 선거철이 되더라도 어깨띠를 두르는 방식으로 당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만 해도 노무현과 이회창의 점퍼는 일반 점퍼였다.

2004년 제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월 24일 확대간부회의를 마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왼쪽)이 공천이 확정된 김한길 후보에게 당의 상징색으로 정한 노란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4년 제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월 24일 확대간부회의를 마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왼쪽)이 공천이 확정된 김한길 후보에게 당의 상징색으로 정한 노란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동아일보 DB

정치인들이 유니폼 형식의 점퍼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2월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란 저금통과 빨간 목도리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팀웍을 상징할 수 있는 소품의 힘을 확인한 여당에서 아예 유니폼을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002년 대선 당시의 선거 복장 / 동아일보 DB
2002년 대선 당시의 선거 복장 / 동아일보 DB

보수당인 자유한국당의 전신이었던 당이 점퍼를 입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뒤로 추적된다. 2012년 1월 한나라당은 광고계에서 평생 활동해온 조동원씨를 신임 홍보기획 본부장으로 영입해 당의 로고를 바꾸고 슬로건을 짜도록 역할을 맡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다”로 유명한 조 본부장은 당의 컬러를 붉은색으로 잡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깜짝 제안을 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과 공천위원장 등이 2012년 3월 15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 당 홍보국에서 제작한 빨간색 점퍼를 입고 입장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새누리당 비대위원과 공천위원장 등이 2012년 3월 15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 당 홍보국에서 제작한 빨간색 점퍼를 입고 입장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결국 2012년 이후 한국 정치인들은 선거 때가 되면 모두 각당의 상징색으로 만든 점퍼를 입고 유권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정치인에게 옷은 그 자체가 중요한 메시지이다. 또한 색깔을 통해 당의 정체성을 유권자에게 분명하게 전달할 수도 있다.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파랑, 자유한국당=빨강, 바른미래당 = 민트, 민주평화당=연두, 정의당=노란색으로 선명한 정체성을 드러냈다. 게다가 점퍼는 서민들이나 일하는 사람들의 복장이니 친서민적인 이미지를 준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이것저것 복잡한 정강이나 정책을 비교하지 말고 점퍼 색깔로 후보자를 뽑으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가져본다. 그래서일까 국제사회에서 선거운동기간 동안 같은 당 사람들이 유니폼처럼 점퍼를 입고 돌아다니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는 없다. 필리핀 선거에서 가끔 본 것 같긴 하다. 한 때는 참신해보였던 선거기법이지만 이번 ‘야구장 난입 사건’을 계기로 정치인 유니폼에 대한 시선이 계속 고울 것 같지는 않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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