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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98년 펩시콜라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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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98년 펩시콜라 탄생

입력 2008-08-28 02:57수정 2009-09-2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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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이거 국산(國産)이에요. 태극마크 안 보여요. 태극마크?”

1999년 개봉한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주유소를 점령한 불량배 가운데 한 명인 딴따라(강성진)가 했던 대사다. 자동판매기에서 펩시콜라를 뽑는 모습을 본 경찰관이 “국산품 좀 애용하라”며 꾸중하자 이렇게 대꾸했던 것.

그가 태극기를 떠올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위는 빨간색, 아래는 파란색에 가운데 흰 줄무늬가 들어간 펩시콜라의 마크는 1950년대부터 쓰였으며 동양의 태극무늬에서 기본 개념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가운데 흰 줄의 폭이 더 넓었고 영문으로 흘려 쓴 펩시콜라라는 글자가 들어갔지만 이후 모양이 조금씩 바뀌며 태극기의 태극마크와 더 비슷해졌다.

펩시콜라는 189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뉴번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31세의 약사 칼레브 브래덤이 개발했다. 탄산수에 타서 마실 수 있도록 만든 시럽 형태였다. 처음에 ‘브래드의 음료(Brad's Drink)’로 불렸지만 같은 해 8월 28일 펩시콜라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화를 뜻하는 그리스어 ‘pepsis’ 또는 어원이 같은 소화효소 펩신(pepsin)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게 정설. 브래덤은 이 음료가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음료가 인기를 끌자 브래덤은 1902년 펩시콜라회사를 세웠고 1903년에 상표를 등록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1886년 미국 애틀랜타의 약사인 존 펨버턴이 개발한 코카콜라가 선점하고 있었다. ‘콜라 100년 전쟁’의 시작이었다.

저가 전략으로 시장을 확대하던 펩시콜라는 1923년 부도를 맞았다. 브래덤이 설탕에 투자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브래덤은 약국으로 돌아갔고 펩시의 주인은 이후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65년 펩시콜라와 스낵업체인 프리토레이가 합병해 현재의 ‘펩시코’가 출범했다. 1975년에는 고객에게 눈을 가리고 펩시와 코카콜라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 ‘펩시 챌린지’ 마케팅을 통해 코카콜라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냈다.

이후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참살이(웰빙)’ 물결은 펩시에 또 다른 기회가 됐다.

콜라만 놓고 보면 여전히 코카콜라에 밀리지만 과일 주스, 스포츠 음료, 스낵 회사를 잇달아 인수합병(M&A)하며 체질을 바꾼 펩시코는 2004년에 처음으로 시가총액과 매출에서 코카콜라를 넘어섰다. M&A를 주도한 인도 출신의 최고경영자(CEO) 인드라 누이는 그 공로로 지난해 포브스 선정 미국 500대 기업의 여성 CEO 가운데 최고 연봉인 1270만 달러를 받았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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