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빈민봉사 굿네이버스,쓰레기장 어린이들로 합창단 결성

  • 입력 2006년 11월 24일 03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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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케냐 나이로비의 고로고초 지역 어린이들로 구성된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이 창단기념 공연을 하고 있다. 나이로비=이헌진 기자
16일 오후 케냐 나이로비의 고로고초 지역 어린이들로 구성된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이 창단기념 공연을 하고 있다. 나이로비=이헌진 기자
16일 오후 케냐 나이로비의 고로고초 지역. 거대한 쓰레기장인 이곳에서는 본드와 마약에 취한 청소년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버려진 음식을 찾는 어린아이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6일 오후 케냐 나이로비의 고로고초 지역. 거대한 쓰레기장인 이곳에서는 본드와 마약에 취한 청소년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버려진 음식을 찾는 어린아이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 레스 미라빌리스, 만두카트 도미눔 파우페르, 파우페르, 세르부스 에트 후밀리스(O res mirabilis, manducat dominum Pauper, pauper, servus et humilis·낮고 천한 우리를 긍휼히 보시어. 주여 주여 먹여 주소서).”

16일 오후 5시 반경 케냐 나이로비 고로고초 지역. 19세기 종교음악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기독교 성가 ‘생명의 양식’이 석양이 내려앉은 슬럼가에 은은히 퍼졌다. 굶주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마약, 범죄 등 슬럼가를 덮고 있는 어둠을 몰아내듯 노래는 장엄하고 힘이 있었다.

한국에 본부를 둔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는 이날 아프리카 최대 빈민가인 이곳에 ‘지라니(현지어로 ‘이웃’) 어린이합창단’을 창단했다.

고로고초는 나이로비의 쓰레기장. 가뭄과 사막화로 시골을 떠난 빈민 10여만 명이 돼지와 함께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삶을 연명하고 있다. 평균수명 50세 미만, 상하수도 설비는커녕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든 절대 빈곤, 10명당 1명 이상인 에이즈바이러스(HIV) 감염률 등에서 보듯 절망의 땅이다.

이곳에서 합창단은 어떤 의미일까. 임태종(56) 굿네이버스 이사는 “어떤 참혹한 환경에도 인간은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창단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양철로 간신히 지붕을 덮은 연습실, 잦은 강도와 도난 등 외적 환경은 그나마 견딜 만했다. 임 이사는 “주민들 사이에 오랜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된, 외국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팽배했다”며 “주민들을 설득해 아이들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6년 이래 10년간 이 지역에서 직업학교와 어린이교육센터 등을 열어 꾸준히 구호 활동을 해온 굿네이버스의 헌신적 노력에 주민들은 마음의 문을 열었다. 1년여 동안의 준비와 오디션을 통해 올해 10월 마침내 합창단 50명이 꾸려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도움과 참여가 잇달았다. 이탈리아 치마로사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음악회만도 200여 회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온 성악가 김재창(50) 씨가 한국을 떠나 상임지휘자를 맡아 줬다. 울산의 중견 건설업체인 시티종합건설도 1억5000만 원을 쾌척해 힘을 보탰다.

굿네이버스와 김 씨는 이 합창단을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처럼 세계적인 합창단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나이로비=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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