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호 나남출판 대표 “세상의 주인은 나무… 사람은 자연의 일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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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무 심는 마음’ 펴낸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

“나이가 들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밖에 없는 것 같다”는 조상호 나남 대표. 나남 제공
“나이가 들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밖에 없는 것 같다”는 조상호 나남 대표. 나남 제공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65)의 ‘나무 이력’이 30년째다. 그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막 입주한 황량한 강남 개포동의 주공 7단지 아파트 입구에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그 느티나무들은 지금도 늠름하다. 서초동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나선, 뜰에 앵두나무를 심었고 친구에게서 떠맡은 서초동 빌딩 앞엔 대나무와 소나무를 심었다.

출판사가 경기 파주시에 새로 자리 잡은 뒤 4년쯤 지난 2008년 조 대표는 출판사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경기 포천시 신북면 갈월리에 나남수목원을 꾸몄다. 살던 서초동 집을 팔고, 빌딩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 수목원을 만들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 만만치 않았다. 집 앞에 있던 앵두나무를 비롯해 잣나무 참나무 소나무 벚나무 등 4만여 그루가 20만 평 땅에 심어졌다.

조상호 대표가 서울 서초동 주택에 심었던 앵두나무가 나남수목원 호숫가로 옮겨 정착했다. 나남 제공
조상호 대표가 서울 서초동 주택에 심었던 앵두나무가 나남수목원 호숫가로 옮겨 정착했다. 나남 제공
적지 않은 세월 나무와 동행해온 그가 에세이 ‘나무 심는 마음’(나남)을 펴냈다. 나무와 사람, 여행 이야기 등 조 대표 삶의 얘기가 담겼다. 그는 36년간 2000여 권의 책을 만들어온, 스스로 ‘책장수’라 부르는 출판인이다. 원고를 읽느라 혹사당한 눈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달리 마음 쏟을 곳이 필요하단 생각에 나무에 공을 들이게 됐다고 했다.

“경북 울진의 대왕 금강송을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금강송을 ‘알현’하는 길이 속세의 길과는 확연히 구별돼요. 원시림을 헤치면서 서너 시간을 가야 합니다. 대왕 금강송을 만나선 나도 모르게 큰절을 올렸어요. 자연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품위 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데 속세의 우리는 얼마나 왜소합니까.” 그는 “늙을수록 기품을 더하는 것은 나무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나무 가꾸는 일보다 조금 더 오래 책을 가꿔온 그다. 조 대표는 “책을 만들면서 얻은 것은 사람”이라면서 “좋은 사람, 좋은 저자들 옆에 계속 있으면서 많이 배워왔다”고 했다. 조지훈 선생, 김민환 고려대 교수, 이윤기 소설가 등 그가 교류한 저자들과의 일화와 추억도 책에 실렸다. ‘시장에 내다파는’ 상품이지만 책에는 사람과의 인연이 담겨 있으며,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성장했듯 독자도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고 조 대표는 말했다. 그는 올가을 수목원에 991m²(300평) 규모의 ‘책 박물관’을 세운다. 이곳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무에서 얻은 종이로 책을 만드는 이에게 나무 심는 일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을 듯했다. 조 대표는 “나무를 키우다 보니 지구의 주인은 나무고, 인간은 그저 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이 깨달음에 기쁘게 승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말 못하는 놈들인 것 같은데 나와는 말이 통합디다”라며 껄걸 웃었다. “넝쿨이 감겨 올라온다고, 벌레가 괴롭힌다고 (나무가) 힘들다 합니다. 그럼 내가 이렇게 저렇게 손을 봐줘요. 그러면서 나도 답답한 속내를 얘기해요. 나무가 그걸 다 들어줍니다. 마음을 쏟으면 크게 돌려줘요. 그게 자연입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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