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지식경영의 대가 日노나카 이쿠지로 교수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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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일수록 리더들이 비전-공동善 제시를”

《전 세계가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비교적 아시아권 기업들이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코노미스트도 최근호에서 “무엇보다 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금융위기 이후 예상을 깨고 빠르게 회복된 경험이 있어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다”고 아시아 파워를 주목했다. 일본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郞·74) 일본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일찍부터 ‘아시아 파워’에 주목해온 경영학자다. 회사나 사회가 어려울수록 비전과 공동선에 대한 공유의식이 필요하다는 그는 “이번 금융위기는 기업과 조직, 개인이 근본적인 공동선(共同善)을 결여하고 이윤 추구에만 몰입한 결과”라고 말한다. 》

현장과 이론 끊임없이 교감시켜 혁신 이뤄야
삼성-도요타 경쟁력은 구성원 지식창조 덕분

인간 존중과 공동체 중시를 내세우는 그는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사람을 물건으로 대하는 것”이라며 비판적이다. 1990년대에 내놓은 ‘지식창조이론’으로 세계 경영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지식경영의 대가인 그를 18일 도쿄 히토쓰바시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위기 상황일수록 ‘우리 회사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라는 비전과 사회 공동선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개인과 기업이 사회공동체 일원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를 포함한 금융위기는 공동선을 결여하고 개인과 기업 단위의 이윤 추구에만 몰입한 결과다.”

―어떻게 하면 기업 구성원들이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나.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더는 기업이 지향하는 비전과 공동선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조직의 지식 창조를 이끌어가야 한다. 나는 이것을 실천적 지혜를 겸비한 ‘사려 깊은(prudence) 리더십’이라 부르고 싶다. 기업이 추구하는 미래가 사회의 공동선과 일치할 때 구성원 전체가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고 성공 확률이 높다. 지금으로선 친환경 같은 것이 공동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불황일수록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이것이 답이다’라는 리더십은 없다. 바람직한 것은 현장과 이론을 끊임없이 교감시키면서 이노베이션(혁신)을 일으키는 리더십이다. 이노베이션의 본질은 지식이다. 나는 지식을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암묵지(暗默知)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이다. 다른 하나는 형식지(形式知)로 개념화되고 언어로 표현된 이론적 지식이다. 암묵지는 직관이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개념화가 안 되면 공유하기 어렵다. 즉 형식지와 암묵지는 상호작용을 거듭할 때 지식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형식지와 암묵지가 끊임없이 교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능력이 바로 리더십이다.”

―그런 리더에게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철학, 역사, 문화 등 폭넓은 교양,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서구의 비즈니스 스쿨은 이 부분을 간과했다. 한때 비즈니스 스쿨이 붐을 이뤘고 분석적 지식이 압도적인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비즈니스 스쿨이) 반성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리더들을 육성할 수 있나.

“훌륭한 본보기가 필요하다. 형식지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의 경험적 지식을 전승하는 데에는 도제 제도가 매우 유용하다. 사려 깊은 리더에게서 경험적으로 우러나오는 지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

―리더십만이 전부는 아닐 텐데….

“그렇다. 현장 사원부터 팀장,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구성원 전체가 상호 교감을 통해 경영지식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지식의 상호 상승작용이다. 최고경영자와 중간관리자, 현장 생산자 모두 새로운 지식 창조와 이노베이션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모범 기업을 꼽는다면….

“파나소닉(옛 마쓰시타 전기)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회장의 중지(衆知)경영을 소개하고 싶다. 마쓰시타 회장은 ‘중지를 모은 전원 경영, 이것이 내가 경영자로서 시종일관 실행해온 것이다. 경영을 통해 전원의 지혜가 발휘되면 될수록 그 회사는 발전한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지식 창조이다.”

―인간을 중시하는 일본식 경영과도 맥이 통하는 것 같다.

“일본 기업이 인간을 중시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인간의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가’를 본다면 그 답은 역시 인간의 지식이다. 지식은 인간만이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식경영이야말로 인간중시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서구식 경영과의 차이인가.

“일본식 경영은 암묵지를 중요시한다. 현장의 직접적인 경험, 오감과 신체적인 경험을 소중히 여긴다. 기업은 사회의 일부라는 인식 또한 서구에 비해 강하다. 서구는 상대적으로 형식지를 중시한다. 성공하는 기업은 암묵지와 형식지를 적절히 균형 잡으면서 다이내믹한 발전을 추구한다. 암묵지에 너무 치우치면 조직이 활력을 잃게 되고, 형식지에 너무 치우치면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빠지고 실천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일본 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업원을 해고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일본식 경영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래도 도요타나 혼다 등은 같은 업종의 미국 빅3에 비해 잘 버티고 있는 것 아닌가. 일본의 유력 기업은 단기적으로는 힘들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지식 창조에 기반해 미래를 향한 연구개발을 꾸준히 하고 있어 성장 잠재력이 여전히 높다. 구조조정은 기업이 최후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사람을 내보내는 것은 사람을 모노(物·물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질은 모노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 발전하는 프로세스 그 자체다. 도요타, 파나소닉, 한국의 삼성처럼 경쟁력 있는 기업의 경영 요체는 구성원의 지식 창조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라고 본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노나카 이쿠지로:

―1935년 일본 도쿄 출생

―1958년 일본 와세다대 정치학과 졸업, 후지전기제조 입사(∼1972년)

―197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박사

―1982년 히토쓰바시대 산업경영연구소 교수

―1997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제록스 지식학 특별명예교수

―2006년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후지쓰, 미쓰이물산, 세븐&아이 홀딩스 등 이사 역임

저서: ‘조직과 시장-시장지향의 경영조직론’ ‘경영관리’ ‘기업진화론-정보창조의 매니지먼트’ ‘지식창조의 경영’ ‘아메리카 해병대’ ‘지식창조기업’ ‘이노베이션과 벤처기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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