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모 교수 “학문을 벼슬하기 위해 합니까”

  • 입력 2006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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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학자가 든 회초리 맛이 매섭다. 교육학계 원로인 정범모(81·사진) 한림대 석좌교수가 최근 펴낸 저서 ‘학문의 조건-한국에서 학문이 가능한가’(나남출판)를 통해 대학 교수의 자세에서부터 대학 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학문적 풍토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 책은 나의 참회록이에요. 한국 대학과 학계에 대한 비판이지만 나 자신이 반세기 동안 한국 대학교수였고 한국 학계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비판은 나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거죠.”

정 교수는 25일 기자에게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1위인데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59위라는 참담한 현실에 대해 느끼는 자괴감이 책을 쓴 계기”라고 씁쓸한 듯 말했다.

정 교수의 비판은 크게 학계 풍토, 앎의 사회 풍토, 대학 풍토 등 세 영역에 집중됐다.

학계의 풍토에 대해 정 교수는 학문적 업적보다 학외적(學外的) 업적의 출중성에 따라 학자를 평가하는 관행을 문제로 들며 이는 “학문이란 벼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옛날 관학관(官學觀)의 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풍토”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가 비판하는 학외적 업적에는 교과서와 개론형 교재 저작도 포함된다. 그는 ‘풋내기 시절인 1950년대에 세 권의 교육학 관계 교과서를 초고속으로 쓴 일’을 털어놓으면서 “교과서형 개론서는 교육용, 상업용은 되지만 학문적 업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화보다 독백이 많고 객관적 비판 대신 인신공격 또는 ‘인신 찬양’이 넘쳐나는 학계 내부의 풍토도 비판 대상에 올랐다.

정 교수는 “한 저명한 공학자가 ‘전공영역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 중 한 사람이라도 읽어주는 논문은 5% 안팎일 것’이라고 개탄한 적이 있다”며 “교수들이 점심시간이나 휴게실에서 주고받는 일상적 대화가 지적 상호작용이 되어야 하는데 별로 그렇지 못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통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성급한 통일은 반대한다’는 견해를 쉽게 말하지 못하듯 부동의(不同意)의 자유가 부족하고 폐쇄적인 정신 풍토도 학문 발전의 걸림돌이다. 정 교수는 ‘현실에 맞지 않는 외국 이론 대신 한국적 이론을 개발해야 한다’는 ‘한국화의 기치’를 폐쇄적 정신 풍토의 한 예로 들었다. 교육을 예로 들면 “교육의 실제는 한국적일 뿐만 아니라 강원도적, 철수적, 영희적일 만큼 구체적이어야 하지만 그 이론은 미국이나 아프리카에도 모두 적용될 만큼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

정 교수는 “나는 학문의 즐거움과 힘, 그리고 그 즐거움과 힘을 찾고 가르치는 대학의 보람을 믿는다”면서 “가끔 환상을 좇는 상아탑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학문은 자아실현 기쁨의 원천이자 문화, 문명, 국가 생존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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