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노력에 너무 의존…학교-사회의 역할 늘려야”

  • 입력 2007년 7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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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천재가 대거 출현한 것에는 역시 부모의 역할이 가장 컸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고민할 문제는 부모들의 개인적 노력으로 이런 신천재들을 키워 내는 동안 공교육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천재의 재능이 빛을 보려면 어떤 조건이 만족돼야 할까. 다중지능이론의 국내 도입에 앞장서 온 문용린(사진) 서울대 교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시카고대 교수와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의 ‘IDF 모델’에 입각해 3가지 요소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첫째, 개인적 소질(Individuality)이 뛰어나야 한다.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에디슨의 말은 노력을 강조하는 말로 곧잘 인용된다. 다중지능이론에 따르면 1%에 해당하는 재능이야말로 99%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결정적 변수이다. 문 교수는 부모의 역할이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둘째는 자신의 재능이 빛날 수 있는 영역(Domain) 즉, 적재적소로 투입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조기입문과 10년가량의 발효기간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이 수학 성적 하나만으로 취리히공과대에 간신히 입학했을 때가 16세. 수학과 이론물리학에 몰두한 그가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것은 그 10여년 뒤인 27세 때였다. 다섯 살에 수영을 시작한 박태환이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딴 것이 열일곱, 여섯 살에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김연아가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게 열여섯 살이었다.

셋째로 경쟁의식을 북돋아 주면서 자신감도 불어넣어 주는 심리적 울타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분야 즉, ‘마당(Field)’이 필요하다. 이 마당에는 관중도 있고, 코치와 감독도 있고, 라이벌도 있다. 운동선수가 경기장 분위기에 따라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 달라지듯 천재들의 기량 발휘도 그들이 놓인 인적환경의 역동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김연아에겐 아사다 마오와 같은 라이벌을 제공해 주고 박태환에겐 마이클 펠프스라는 넘어야 할 목표를 설정해 준 것도 이런 마당이었다.

문 교수는 이런 모델에 비춰볼 때 한국의 신천재들의 등장은 부모에 의해 이른 시기의 소질 발견이 잘 이뤄지는 I단계의 첫 단추는 잘 꿰고 있지만 학교와 사회가 담당해야 할 D단계와 F단계도 대부분 부모의 힘에 의존하는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천재의 소질 발현은 김치의 발효 과정과 같아야 합니다. 제대로 숙성이 이뤄지기까지는 김칫독의 뚜껑을 자주 열지 말고 오랜 시간 항아리에 푹 담가 둬야 합니다. 그걸 속성으로 하겠다고 설치면 떫어지거나 쉽게 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평준화에만 초점을 둔 현재의 공교육체계에선 이런 과정을 밟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과당 사교육의 유혹을 떨치고 묵묵히 이런 발효기간을 견뎌낸 부모들의 안목이 놀라울 뿐입니다.”

문 교수는 신천재의 등장을 한국사회가 장유유서를 강조하는 유교적 권위주의에서 벗어남에 따라 젊은 세대가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 시대적 흐름의 변화에서 찾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과거 기성세대의 권위에 눌리는 심리적 중압감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공부 못한다고 주눅 드는 법이 없이 ‘왜 안돼’와 ‘내가 왜 못해’라는 생각으로 기성세대는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분야로 뛰어듭니다. 예전 같으면 ‘먼저 인간이 돼라’는 식으로 훈육하기에 바빴던 부모들도 설령 실패를 하더라고 혼을 내기보다는 격려를 해 줍니다. 그런 칭찬과 격려의 문화 속에서 창의성이 꽃피는 것 아닐까요.”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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