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5년 대동강철교 완교

  • 입력 2005년 3월 23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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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지고 뒤틀린 철교에서 위험천만한 생사(生死)의 곡예가 벌어지고 있었다. 보따리를 하나둘씩 짊어진 채 공포감과 절망감으로 철교 아치와 상판(上板)을 건너는 사람들. 더러는 철교 아래 강으로 뚝뚝 떨어지고, 더러는 철제 빔에 매달려 버둥거리고….

AP통신의 종군기자 막스 데스포가 찍은 사진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란민’의 모습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초 평양의 대동강은 이렇게 처절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은 당시 중공군이 인해전술(人海戰術)로 개입하자 12월 4일 평양을 포기하고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곧이어 중공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대동강 철교를 폭파해버렸다.

“철교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피란민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길을 나선 사람들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 찍는 일뿐이었습니다. 어찌나 추운지 군용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이 얼어 셔터를 누르기가 힘들었습니다.”

막스 데스포의 이 사진은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100년 전 오늘, 1905년 3월 24일 시작된 대동강 철교의 역사는 처음부터 비극적이었다. 일제는 대륙 침략을 위해 서울의 용산에서 신의주까지 499km 구간에 경의선 철도를 놓기로 하고 1904년 3월 공사에 들어갔다. 그 공사의 일환으로 1905년 3월 24일 첫 대동강 철교가 완공된 것이다.

당시 대동강 철교 완공을 앞두고 열차 시운전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아무도 열차에 타지 않았다. 철교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탓이었다. 그래서 결국 시운전행사에선 빈 열차가 철교를 건너야 했다.

이러한 우려 때문이었을까. 일제는 1942년 좀더 튼튼한 두 번째 대동강 철교를 건설했다.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을 잇달아 일으킨 일제로선 군수품 보급을 위해 더욱 튼튼한 교량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사진 속의 대동강 철교였다.

경남 거제에 있는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한국전쟁 구역’엔 사진 장면의 일부를 축소 재현한 조형물(높이 약 5m, 길이 약 7m)이 전시되어 있다. 조형물 속 피란민들의 처연한 눈빛, 무참하게 부서진 철제 교량…. 대동강 철교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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