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영화 확 달라진 계기는…” 한국으로 유학 온 헝가리 청년의 꿈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0일 19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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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은 헝가리 청년 가보 세보 씨
고려대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은 헝가리 청년 가보 세보 씨
‘한국을 알고 싶고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 시작은 그 흔한 K-Pop도 드라마도 아니었다. 헝가리 청년 가보 세보 씨(36)를 부다페스트에서 움직인 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김기덕 감독의 장르영화들이었다.

한국영화 이론을 공부하겠다며 2015년 9월 고려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1년, 가보 씨는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았다. 고 신상옥 감독(1926~2006)과 영화배우 최은희(1926~2018) 부부의 납북과 탈북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를 관람한 뒤 북한 영화로 고개를 돌린 것. 논문 ‘신상옥 감독이 북한 영화에 미친 영향’으로 이달 초 박사학위를 받은 가보 씨를 10일 고려대에서 만났다.

“신 감독이 가져온 변화요? 사회 문제에 천착하던 북한 영화를 사랑과 같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감정을 조명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실제로 가보 씨는 신 감독이 납북된 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직접 연출한 영화 7편을 모두 섭렵해 분석했다. 북한영화 최초로 키스신과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돌아오지 않는 밀사’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내용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역설적으로 김정일은 이런 영화를 해외시장에 내보내 “우리도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선전 도구로 쓰기도 했다. 실제로 최은희 씨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전 영화들의 장면들을 비교하며 “남녀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거나 동지적 감정으로 손을 잡는 게 전부였던 북한 영화가 확 달라졌다. 연애감정을 살리거나 피가 낭자한 자극적인 장면들이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 납북 전 옛날 북한영화 ‘춘향전’ 속 성춘향과 이몽룡의 첫날밤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이었다”고도 귀띔했다.

괴물이 나오는 판타지 SF영화 ‘불가사리’가 가져온 음향효과 등 기술 변화도 상당했다. ‘연인과 독재자’ 시사회에서 우연히 만난 신 감독 아들 신정균 감독과의 심층 인터뷰는 천군만마였다. 신 감독 부부가 한국으로 귀국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해빙 무드를 타고 불가사리가 한국에서 재개봉 됐을 때 “아버지(신상옥 감독)가 불같이 화를 내셨다. 북한에서 만든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는 흥미로운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가보 씨가 북한 영화에 애착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소련 아래서 공산주의를 겪은 고국 헝가리와의 유사점도 배경이 됐다. 그는 공산주의 시절인 1950년대 헝가리 영화와 북한의 1980년대 영화를 비교하기도 했다. “주인공들의 직업이 몸을 쓰는 노동자로서 땀 흘려 일해 공화국에 기여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라면 헝가리 영화는 내부반동 인물을 교화해 올바른 체제인사로 교화시켜나가는 것이 다르다. 이에 비해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 등 외부의 적을 만들어 물리치고 민족주의를 고취시켜 나간다”고 짚었다.

박사과정을 마친 뒤 헝가리로 돌아가는 가보 씨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북한에 대한 영화를 꼭 만들고 싶다. 유럽에서는 아직 베일에 가려진 북한을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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