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노총각’ 함민복 시인, 쉰살 동갑내기 제자 박영숙 씨와 결혼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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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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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쾌거” 문인 70여명 몰려 떠들썩

쉰 살 노총각 함민복 시인의 결혼식은 문단의 한바탕 축제였다. 인천 강화에서 인삼가게를 하면서 시를 쓰는 함 시인에게 주례를 맡은 소설가 김훈 씨는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쉰 살 노총각 함민복 시인의 결혼식은 문단의 한바탕 축제였다. 인천 강화에서 인삼가게를 하면서 시를 쓰는 함 시인에게 주례를 맡은 소설가 김훈 씨는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제가 수많은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 봤지만 신랑이 부케를 들고 있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나이 쉰의 노총각 신랑은 그제야 슬며시 동갑내기 신부에게 부케를 건넸다.

축가를 맡은 가수 안치환 씨는 “파격적인 결혼식이니 저도 신나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라며 직접 기타를 들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했다. 150여 석 좌석과 식장 뒤, 양옆을 가득 메운 300여 친척과 문우들도 박수를 치며 따라 불렀다. 흥겨운 한바탕 잔치였다.

‘문단의 대표 노총각 시인’인 함민복 시인(50)이 동갑내기 제자 박영숙 씨를 아내로 맞았다.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학연금회관 2층. 결혼식장 앞에는 이육사문학관이 보낸 ‘문단의 쾌거’라고 쓰인 화환이 하객을 맞았다.

함 시인은 7년 전 경기 김포시에서 시창작교실 강의를 하다 수업을 들으러 온 신부를 만났다. 2년여 전부터 인천 강화군에서 함께 살다 이날 뒤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구순인 신부의 어머니가 5남 5녀 중 막내인 신부의 결혼식을 꼭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

흥미진진한 주례를 위해 진지하게 주례사를 검토하고 있는 소설가 김훈 씨.
흥미진진한 주례를 위해 진지하게 주례사를 검토하고 있는 소설가 김훈 씨.
1988년 등단한 그는 ‘말랑말랑한 힘’ 등 4편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 가난과 외로움 등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서정적 시로 주목을 받았다. 1996년엔 월세방을 구해 강화 동막해변으로 들어갔다. 홀로 외딴곳에서 생활하며 시 창작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에 문우들은 걱정이 컸다. 그래서인지 식장을 찾은 문인들은 묵은 근심이 다 풀리는 듯 환한 모습이었다.

김요일 시인은 “강화도에 가면 혼자 사는 노총각이 궁상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 여름에 가도 추워 보였다. 결혼을 하니 내 마음이 더 따뜻해지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시인인 아내 김소연 씨와 함께 온 함성호 시인은 “결혼은 안하고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데 실수를 한 것 같다”며 농담을 건넸다. 이 말이 좀 미안했던지 함 씨는 곧바로 “결혼 이후에는 더 따뜻한 시가 나오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이날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소설가 김훈 씨의 주례였다. 김 씨는 “아침에 나올 때 주례를 하러 간다고 했더니 아내가 ‘당신 자신이 좀 새로운 인간이 되라’고 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신랑 신부는 강화에서 인삼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6개월 동안 가게를 보면서 딱 두 번 팔았다는군요. 매출은 7만1000원. 제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했죠. 그런데 그중 한 번은 손님이 카드로 계산하려고 하는데 (함 시인이) ‘매출도 적은데 수수료 때문에 안 된다’고 해서 현금으로 받았대요. 그래서 제가 ‘그건 잘했다’라고 했죠.” 김 씨는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주례를 마쳤다.

신랑보다 더 즐거워하는 이문재 시인(오른쪽) 등 문인 하객들.
신랑보다 더 즐거워하는 이문재 시인(오른쪽) 등 문인 하객들.
시인 이정록 씨는 축시 ‘우주의 놀이’를 낭독했다.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새싹 신랑신부의/영원한 소꿉놀이입니다./사랑사랑, 배냇짓 춤입니다./화촉을 밝히는 순간,/태초가 열립니다. 거룩한/우주의 놀이가 탄생합니다’

이날 장석남 박형준 권대웅 우대식 유정룡 이문재 조동범 손택수 문태준 씨 등 시인 소설가 70여 명이 식장을 찾았다. 식이 끝난 뒤 함 씨 부부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처음 비행기를 탄다는 신랑 함 씨의 얼굴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시종 환했다. “남들은 20, 30년 전 한 건데 쑥스럽네요. 문단엔 아직 노총각인 분이 꽤 있어요. 40대 노총각에게는 희망을 주고, 50대 후반 이상 분에게는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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