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새별 새꿈]<3>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으로 단숨에 주목받은 최제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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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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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지만 탄탄한 얼개 ‘이야기 공학자’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사)은 최근 5쇄를 찍었다. 지난해 9월 출간 당시 초판 2500부가 한 달 만에 소진됐고, 이후로도 작품을 찾는 독자들의 요청이 계속됐다. 신인 작가의 첫 소설집의 경우 대개 1년이 지나도 초판이 소화되지 않는 게 현실인 것을 고려하면 ‘퀴르발 남작의 성’의 시장 반응은 눈에 띈다. 최제훈 씨(38)는 이 첫 책으로 단숨에 주목받는 신인이 됐다.》

“깊게 보고 뒤집어봄으로써 익숙하게 보였던 것들은 새롭게 읽힐 수 있다. 독자들에게 그런 새로움을 주고 싶다”는 소설가 최제훈 씨.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깊게 보고 뒤집어봄으로써 익숙하게 보였던 것들은 새롭게 읽힐 수 있다. 독자들에게 그런 새로움을 주고 싶다”는 소설가 최제훈 씨.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처음 책을 냈고, 처음 인터뷰라는 걸 해봤고, 처음 낭독회도 했고, 제 작품에 대한 독자 서평이란 것도 처음 읽어봤고… ‘어려서’ 처음 해보는 게 많았습니다.” 농담이다. 그는 서른네 살이던 2007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생 작가들이 쏟아져 나온 문단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등단은 늦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작품은 ‘어렸다’. 신선했다는 의미다.

등단작이자 소설집의 표제작이 된 단편 ‘퀴르발 남작의 성’은 각기 다른 시간대의 6월 9일 벌어지는 퀴르발 남작의 이야기에 대한 다양한 변주 모음이다. 이야기라는 것이 어떻게 변용되는지를 보여주는 한편 이야기의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고 의문을 던짐으로써(‘퀴르발 얘기’ 중 처음으로 꼽히는 1967년의 에피소드조차도 ‘소문’일 뿐이다) 작가는 ‘이야기’에 대한 독자의 기성관념을 뒤흔든다.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기발한데, 살아온 삶은 평범하다고 했다.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인생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놓지는 않았다. ‘취직하기에 무난할 것 같아서’ 경영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프로필이 이채롭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경영학도가 소설가가 되기로 했다는 데는 극적인 계기가 작동했을 법한데, 정작 그는 ‘흘러오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뭔가 멋진 사연이라도 만들어내고 싶다”니 ‘신비주의 전략’은 아닌 듯싶다. 그래도 회사원의 삶을 생각했던 사람을 작가로 바꿔놓은 데는 운명이 전환점을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긴 했어요. 군대 갔다 와서 보니까 친구들은 회계사 되겠다고 준비하고 정보도 나누고 하는데 거기 끼어들 수가 없더라고요. 대학 3학년 때였는데 그때부터 국문과, 심리학과 전공과목을 듣기 시작했어요. 독서를 좋아했으니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끌렸지요. 국문과에서 소설 쓰기 과목을 듣게 됐고, 작품을 써봤는데 그 과목을 담당하셨던 소설가 최인석 선생님한테서 칭찬을 받았어요. 꽤 고무됐죠. 국문과 소설 창작 동아리에도 들어갔어요. 생각해 보니… 그때가 읽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 흥미가 바뀌었던 때가 아닐까 싶어요.”

훈련 기간은 길었다. 문창과를 졸업한 뒤 대학에서 교직원 생활을 하면서 습작을 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글 쓴다는 것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4년여 계속했던 직장생활을 그만뒀다. 소설에 매진한 지 1년 만에 그는 등단했다.

평론가 우찬제 씨는 최제훈 씨의 소설을 두고 ‘문화공학’적인 새로운 출구라고 평했다. “흥미로운 추리와 진지한 추론, 기상천외한 발상과 기발한 전개, 뒤집기와 비틀기, 격렬한 소용돌이 이후의 성찰적 여진” 등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퀴르발…’뿐 아니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에서는 셜록 홈즈가 코넌 도일의 죽음을 추적한다는 도발적인 가정을 선보이고,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현대로 오면서 원작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하기 위해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를 인터뷰한다. 소설의 마지막 단편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는 이 작가의 아이디어가 특히 빛나는 지점이다. 퀴르발 남작, 셜록 홈즈, 프랑켄슈타인 등 소설집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총출연해 수다 한판을 벌인다.

“사람이 죽음이란 것을 인식하고 살게 되면서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그로 인한 공허를 채워야 하는데, 이야기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독서를 함으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독서를 통해 모르던 세상을 간접 경험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음의 공포로부터 탈피하는 것이겠지요.” 작품 전체를 통해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묻는 그가 내놓은, 하나의 답이다.

올봄 그는 계간 ‘자음과모음’에 연재했던 장편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네 편의 연작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첫 얘기에서 등장인물인 번역가가 자신이 번역한 책이라며 소개하는 작품이 두 번째 이야기의 내용이 되는 식으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반복된다. 작가의 장기가 잘 발휘됐다는 문단의 평을 받았고 그만큼 독자의 반응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이야기성’에 대한 인문학적 탐색을 소설로 다시 쓰는 게 제 작업이었습니다. 하반기에는 문지 웹진에 연재를 할 텐데 그땐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보여주려고요.” 독자들을 위한 ‘선물’을 공들여 만들겠다는 그의 다짐에서 신중하고도 섬세한 ‘소설공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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