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김동근 ‘1577-1577’ 대표 대리운전은 ‘알바’ 아닌 직업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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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도 영화도 목욕도 운동도 1000원씩 내면 이용할 수 있는 ‘대리기사 복지타운’ 세울 것



▲“사무실에 꿀이라도 발라놨어?” 회사를 떠나지 않는 김동근 대표를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면 김 대표는 “절대 현장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철칙”이라고 답한다. 그는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대리운전 신청전화가 몰려 손이 모자랄 때는 직접 전화를 받는다. 박영대 기자sannae@donga.com


“밤에 술 마시는 사람들 대신 운전해주는 게 종노릇 아니고 뭐냐?”

평소 직업에 귀천이 없다던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도서대여점을 그만두고 대리운전을 하겠다고 했더니 불같이 화를 냈다. 대리기사 4700명을 고용하면서 연 3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코리아드라이브 김동근 대표(41)가 9년 전 겪은 일이다.

당시 그는 ‘대안’이 없었다. 빚 5000만 원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이었고, 도서대여점도 본사가 부도나면서 혼자 버티기 힘들었다. 그는 70만 원으로 중고 ‘다마스’ 한 대를 사서 대리운전에 나섰다. 주차된 차에 홍보전단 끼우기, 전화 받기, 운전하기 모두 혼자서 하는 ‘1인 기업’이었다.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1577-1577’은 2001년 이렇게 시작됐다.

○ “개천에서 용 안 난다고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코리아드라이브 사무실에서는 새 가구 냄새가 났다. 올해 3월 입주한 터였다. 낮이라 그런지 100여 석의 콜센터는 한가했다. 사장실은 콜센터 바로 옆이다. 김 대표는 “대표는 현장에 자석처럼 꼭 붙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도 금요일 밤에 콜센터 직원 손이 모자라면 본인이 직접 전화를 받는다.

그는 인터뷰하려 앉자마자 책 한 권을 펼쳐서 보여줬다. 미국의 통신기기 제조회사인 ITT 대표를 지낸 헤럴드 제닌이 쓴 ‘프로페셔널 CEO’였다. 그는 다음 대목을 소리 내어 읽어주기까지 했다.

“지금껏 나는 어떤 공식이나 도표, 또는 경영이론에 따라 회사를 운영했다는 CEO를 만나본 적이 없다. (중략) 반면 정규교육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하고 변변한 경영서적 한 권 읽어본 적 없지만 자수성가한 사업가는 종종 봤다. (중략) 그들은 사업체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사업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자신도 성장해 왔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단돈 2000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온 김 대표는 “요즘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래도 역경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해 멋진 성과를 거두는 사람이 많다”며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4남 1녀인 형제자매는 모두 중학교까지만 정규교육을 받았다. 셋째인 김 대표와 막내 남동생만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 대리운전업계 최초로 TV광고 한 이유

김 대표는 자신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습관이 있다. 휴대전화에 가득한 문자메시지 중 70%는 본인이 보낸 것이다. 대리운전을 하던 시절부터 붙은 습관인데, 그때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경영방침을 메모하는 것이다. 그는 “운전하면서 메모지를 꺼내 메모하는 것이 번거로워 문자메시지로 대신했다”고 말했다.

한밤중에 보낸 메시지도 있었다. 8월 2일 오전 2시 59분에 쓴 메시지는 ‘콜 가장 잘 받는 여직원 섭외(해서), 꼴등들 하루 교육 자리 만들어줄 것’이라고 쓰여 있다. 업무능력이 뛰어난 직원을 섭외해서 그렇지 못한 직원들을 교육하자는 생각이다. 그는 스마트폰이 있어도 쓰지 않는다. 운전하면서 스마트폰을 쓰기가 힘들고, 메시지를 작성하기까지 너무 많은 버튼을 눌러야 해서 번거롭기 때문이란다.

김 대표는 짠돌이다. 본인에게 책정된 사장 월급은 500만 원, 아내에게 주는 생활비는 300만 원이다. 그렇게 주고 난 뒤엔 집에 10만 원 더 갖다 주는 것도 아까워한다. 옷은 10년 동안 안 사다가 2008년 사기 시작했다. 워낙 가난하게 살다 보니 검약이 몸에 배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젠 여유 있게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대”라는 말로 응수한다.

하지만 회사 홍보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홍보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서다. 지금도 버는 돈의 60% 이상을 홍보비로 쓴다. 라디오 광고, 올림픽대로 전광판 옆 광고, 대리운전업계 최초의 TV광고까지.

○ “대리운전 최초 상장, 얼마나 멋있겠어요”

1인 기업으로 시작한 1577-1577 소속 대리기사는 현재 4700명까지 늘었다. 이 중 60%는 ‘투잡족’이다. 낮에는 회사원으로,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한다. 30, 40대가 가장 많은 편이다. 근무시간은 오후 8, 9시부터 오전 2, 3시다.

김 대표는 기사들에게 늘 “대리운전을 잠깐 스쳐지나가는 아르바이트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대리운전 하면 어두운 이미지부터 떠올리거나 대리운전회사를 구멍가게로 보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싶은 게 그의 욕심. 그는 “광고를 열심히 하는 것도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며 “‘대리운전도 광고를 하네’ ‘TV광고 할 정도면 규모가 꽤 커야 할 텐데. 괜찮나봐’ 이런 반응이 오면 굉장히 기분 좋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리운전회사 최초로 상장을 꿈꾼다. 그는 “상장회사 직원이라고 하면 얼마나 멋있겠느냐”며 “복지타운(건물)을 지어서 우리 대리기사들이 1000원으로 밥 먹고 1000원으로 목욕하고 1000원으로 영화 보고 1000원으로 운동도 하는 그런 곳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5년 내에 한국 최초로 상장하는 대리운전업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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