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0년 美투자귀재 리버모어 자살

  • 입력 2007년 11월 2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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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구려. 상황이 너무 안 좋아요. 이제 싸우는 데 지쳤소. 나는 실패자요. 정말 미안하오. 이게 최선의 돌파구요. 사랑하오.”

1940년 11월 28일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월스트리트 사상 가장 ‘악명 높고 솜씨 좋은 투자자’로 이름을 날린 제시 리버모어가 63세를 일기로 권총 자살할 때 아내에게 남긴 유서 내용이다.

187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리버모어는 14세 때 보스턴의 주식방(무허가 주식 거래소) 시세판 담당자로 일하며 단돈 5달러로 주식 매매를 시작해 주식계의 거물이 된 ‘월스트리트의 위대한 곰’이다.

그는 주가 표시기의 시세를 칠판에 옮겨 적으며 시장을 파악하고 주가 흐름을 배웠다. 1년 뒤 회사에서 받는 급료보다 투자 수익이 많아지자 전업투자자로 변신했다. 16세에 1000달러를 버는 등 대부분의 주식방을 휘젓고 다니자 그는 곧 ‘소년 도박사’로 불리며 업계의 기피 인물이 됐다. 이때부터 합법적인 주식 거래에 뛰어들었다.

그는 추세 발생 시점을 기다려 자금의 일부를 투자한 다음 추세가 강화되면 자금을 추가로 투입하는 추세매매법을 사용했다. 추세매매법은 가치투자법과 더불어 오늘날 주식매매 기법에서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의 투자 철학과 투자 기법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투자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가 떠난 지 67년이 됐건만 그의 투자 기법에 대한 책은 올해에도 나오는 등 계속 쏟아지고 있다.

리버모어는 주가가 하락할수록 이익이 커지는 공매도(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에 주력해 비난도 많이 받았다. 1929년 주가 대폭락을 예견하고 공매도로 단숨에 1억 달러(현 20억 달러 가치)를 벌어들였을 때 ‘경제 대공황은 리버모어 탓’이라는 원성이 나왔을 정도다.

리버모어는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거액을 벌었고 요트를 타며 화려하게 살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홀로 ‘시세’와 싸우며 보냈다. 그에겐 주식이 긴장감 속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도박이었던 셈이다. 그는 외로웠고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자살하며 남긴 것은 결국 1만 달러가 채 안 되는 부동산뿐이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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