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 산소같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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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 아들 모교 간 김태현씨, 청소년들에 ‘자살방지’ 교육

2011년 16세 때 뇌사상태에서 장기 6개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김기석 군의 아버지 김태현 씨가 28일 서울 노원구 덕릉로 재현고등학교에서 강연을 마친 후 기석 군이 기증한 장기 6개를 뜻하는 붉은 카네이션 6다발을 이 학교 학생에게서 선물로 받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011년 16세 때 뇌사상태에서 장기 6개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김기석 군의 아버지 김태현 씨가 28일 서울 노원구 덕릉로 재현고등학교에서 강연을 마친 후 기석 군이 기증한 장기 6개를 뜻하는 붉은 카네이션 6다발을 이 학교 학생에게서 선물로 받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금까지 어딘가에서 6명의 제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걸 생각하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보니 500명의 아들이 더 생긴 것 같은 마음입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6개의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뇌사 기증인 김기석 군의 아버지 김태현 씨(56)가 28일 아들의 모교인 서울 노원구 재현고 강단에 섰다. 5년 전 아들 운구차량이 학교 운동장을 돌 때 느꼈던 슬픔이 도질까 봐 다시 찾을 생각은 쉽게 못 했다. 늘 아들이 대신 해줘 난생처음 만들었다는 프레젠테이션 첫 화면엔 기석 군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김 씨에겐 강당을 가득 채운 500여 명도 ‘기석 군’으로 보였다.

 기석 군은 2011년 12월 고1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원에 가던 중 갑작스러운 두통으로 병원에 갔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신장, 간장, 췌장, 심장 등을 기증해 6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기석이가 떠난 뒤 눈이 좋던 아내는 시력이 악화돼 1년 만에 두 번이나 안경을 바꿨다. 자식을 잃은 아픔을 왜 ‘상명지통(喪明之痛·눈이 멀 정도로 아프다)’이라 하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자식의 죽음을 인정하기도 힘겨웠지만 슬픔 대신 나눔을 택한 건 평소 남 돕기를 좋아했던 아들이 떠올라서다. 182cm의 훤칠한 키에 운동을 좋아했던 기석 군은 엄마가 편찮으신 친구가 기죽지 않도록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전단지 아르바이트로 번 용돈으로 친구들에게 베풀던 착한 아이였다.

 김 씨는 아들이 뇌사 판정을 받은 뒤 가족들에게 장기기증 얘기를 꺼냈다. 그는 “비록 의학적으로는 못 살렸지만 6명의 생명을 구했으니 제 아들을 살린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들이 마지막까지 실천한 나눔을 기억하며 자신도 장기기증 서약에 동참했다.

 이날 김 씨가 학교를 찾은 진짜 이유는 친자식 같은 아들 후배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학교폭력과 따돌림 문제로 청소년 자살이 늘고 있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장기기증운동본부는 삶을 쉽게 포기하려는 청소년들에게 많은 생명을 살리고 떠난 선배를 소개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

 김 씨는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산소 같은 존재’다.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한순간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곁에 있을 땐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표현을 못할 뿐 그 사랑은 깊다는 것이다. 다 커서도 등교할 때마다 아빠에게 뽀뽀를 해준 사랑스러웠던 아들이라고 소개할 때 씩씩하던 김 씨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나쁜 생각을 하기에 앞서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부모님에게 얼마나 슬픔이 될지 떠올려 보라고 주문했다. 자신이 친구에게 더 소중한 사람인지, 부모에게 더 소중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면 선택은 ‘사는 것’이라는 것이다. 

 강연이 끝나고 재현고 학생대표 6명이 기석 군이 기증한 6개 장기를 상징하는 붉은 카네이션 6다발을 김 씨에게 선물했다. 생의 끝까지 나눔을 실천한 선배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그 아버지를 향한 ‘고맙습니다’란 말이 적혀 있었다.

 김 씨는 “5년 전 아들 입학식 때 왔던 강당에서 아들과 같은 교복을 입은 후배들을 보니 오랜만에 아들을 다시 만난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2만7444명이지만 지난해 기증자는 501명에 그쳤다. 인구 대비 기증서약자 비율은 2.39%(123만1217명)로 미국(48%) 영국(31%) 등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장기기증#김기석#재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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