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사냥 한평생’ 비젠탈 별세

  • 입력 2005년 9월 21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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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망각과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뒤 나치 전범 색출에 평생을 바쳤던 시몬 비젠탈(사진)이 20일 오스트리아 빈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전쟁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1908년 지금의 우크라이나 리비프 인근의 한 마을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1년 나치수용소로 끌려가기 전까지 건축가로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만 3년간의 수용소 생활 끝에 89명의 일가친척을 잃고 아내와 단둘만 살아남은 그는 인생의 목표를 ‘나치 사냥’으로 바꿨다. 50여 년간 1100여 명의 나치 범죄자를 찾아내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뒷날 그는 “처음에는 한 몇 년만 해 보자고 한 것이 수십 년이 흘렀다”고 회고했다.

특히 1960년 유대인 학살 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10여 년간 추적해 아르헨티나에서 검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또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인 안네 프랑크를 체포한 경찰관을 5년간 추적해 체포한 일도 유명하다.

2001년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침략 사실이 충분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비판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신변 위협 및 비난과도 싸워야 했다. 오스트리아인의 부역 사례를 끄집어내던 그에게 총리였던 브루노 크레이스키는 1975년 “오스트리아를 더럽히려는 마피아의 일원”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존을 위해 나치에 부역했다는 오명도 썼다.

그 뒤 그의 노력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아 미국, 이스라엘, 오스트리아 등에서 각종 훈장과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추도식은 21일 빈의 중앙묘원에서 열릴 예정이며 시신은 이스라엘에 안장될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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