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사는 소비자들 32년째 ‘봉’… 자동차제작증에 생산일 미상

  • 동아경제
  • 입력 2019년 5월 22일 16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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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제작증 서식. 한국자동차품질연합 제공
자동차제작증 서식. 한국자동차품질연합 제공
#올 초 장모 씨는 자신의 포드 대형 SUV 익스플로러를 때려 부쉈다. 판매 대행사인 포드코리아가 신차가 아닌 수리 흔적이 있는 중고차를 팔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차주는 국가기술자격을 획득한 기술법인 감정평가를 받고 익스플로러 지붕 부분과 트렁크 가장자리 도장 흔적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포드 본사가 제출한 차의 이력을 살펴본 결과 수리 차량이나 중고차라고 볼 만한 사항을 발견할 수 없다며 끝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의 제도적인 허점으로 인해 ‘수입 새 차의 중고차 시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소비자들은 정확한 제작날짜를 확인하지 않은 채 수입차를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수입차는 이동을 비롯해 선적, 하역 등 소비자에게 인도되는 시일이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된다. 이로 인해 차에 녹이 슬거나, 쌓여있는 재고차를 새 차로 속여 판매하는 등 실제 피해 사례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처럼 수입차 구입 후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허술한 ‘출생신고’ 절차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자동차제작증 기재사항에 대한 내용이 별도 규정이 없어 실제 제작일자를 기재하지 않고 수입신고필증의 신고일 등을 기재해도 무방한 것이다.

가령 2018년 5월 현지공장에서 제작된 독일산 수입차가 2019년 5월 들어와 수입신고를 마쳤다면 수입 대행업체들이 해당 차량의 제작년월일을 2019년 5월로 작성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2018년 생산 차량임에도 소비자가 받는 자동차제작증에는 생산일이 아닌 신고일자가 기록되면서 2019년에 생산된 차량으로 보여 진다.

수입신고필증을 허위로 작성한 불법행위도 자주 적발된다.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003년에 생산된 타워크레인을 2013년에 출시된 것으로 둔갑시켜 판매한 일당을 5년 만에 붙잡았다. 이들 수입업자들은 수입 중고 타워크레인의 서류상 연식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하는 관세사들이 서류 누락 여부만 살핀 점을 노렸다. 관세사들은 수입업자가 제출한 서류의 내용을 그대로 전산 입력했고 구청 자동차등록사업소에서는 등록증을 발급했다. 제동 한 번 걸리지 않고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보통 시군청에 자동차 등록을 딜러사가 고객 편의를 앞세워 대신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차주들은 자동차제작증 서류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입 관련 서류나 판매회사 등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소비자들이 정확한 생산일자를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를 관할하는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과는 7년째 묵묵부답이다. 국토부는 지난 2013년 이 같은 내용이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사진)에 올라와 시정 조치 검토를 공식 발표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으로 돌아간다. 국내 소비자들은 수입차가 개방된 1987년부터 3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제작년월 확인과 같은 기본적인 권익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소비자가 ‘봉’이냐는 원성이 들리는 이유다.
북미 수출 자동차에 부착하는 생산연월이 표시된 인증 라벨.
북미 수출 자동차에 부착하는 생산연월이 표시된 인증 라벨.

하지만 유럽, 북미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이 같은 기재사항을 엄격히 준수하고 있어 국내 사정과 대조를 이뤘다. 실제로 한국에서 북미로 수출하는 차량은 미국연방법규(Code of Federal Regulation)에 따라 자동차 생산 연월까지 표시하는 인증 라벨을 B필러에 부착한다.

전문가들은 자동차제작증에 실제 제작일자를 기입하도록 법규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종훈 대표는 “수입차의 경우 자동차제작증 상 제작연월일을 국내생산 자동차처럼 실제 자동차제조회사의 제작일자를 기재하도록 해야 한다”며 “자동차제작증 별지 서식 중 자동차의 표시란에서 별도로 생산 국가를 표시하는 항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차종, 연비, 안전성 등을 조목조목 꼼꼼하게 챙겨 자동차를 구입하고 인수받을 때는 제작일자를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소비자는 선택할 권리뿐만 아니라 확인할 권리도 있다”고 덧붙였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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