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反기업이란 무엇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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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 이란 용어 잘못 사용…시장 감시하는 ‘경제 검찰’ 역할 중요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조사할 전담반이 최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안에 꾸려졌다. FTC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처럼 기업들의 독과점이나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는 기관이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도 “반(反)독점법 아래 어떻게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지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다”고 말해 IT 대기업들이 떨고 있다고 한다.

미 정부의 ‘기업 혼내기’는 역사가 길다. 석유재벌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을 반독점법으로 제소해 30여 개로 해체한 1900년대 사건이 유명하다. 현재의 엑손모빌 셰브론 등이 이때 분리된 회사들이다. 1980년대에는 통신회사 AT&T가 8개 회사로 분할됐고, 2000년대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정부 소송으로 해체될 뻔하다 간신히 모면했다.

소비자들의 집단소송도 기업들을 무척 괴롭힌다. 유통회사 타깃(Target)은 2013년 해킹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되자 피해 보상 비용만 2000억 원을 지출했다. 다우코닝은 1990년대 성형수술용 실리콘이 암을 유발했다는 의혹으로 집단소송에 휘말려 파산했다.

‘자본주의 맏형’인 미국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반(反)기업 공산주의 정부라는 비난이 들끓을 것이다. 한국은 시장을 독점한다고 재벌을 해체한 적도 없고, 집단소송으로 기업을 망하게 한 경우도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기업의 천국이고, 한국은 기업 하기 힘든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의아하다. 미국에도 반독점법 등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재벌 혼내주다 늦었다”는 말을 비롯해 기업에 대한 말로 종종 구설에 올랐다. 시민단체 시절에나 그냥 넘어갈 그의 말투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공정위나 금융감독원 같은 ‘경제 검찰’은 원래 ‘기업들을 혼내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검찰이 제 역할을 해야 사회가 건강한 것처럼, 경제 검찰은 기업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건전한 기업들이 살아나고 시장경제가 꽃핀다. 대통령이나 경제부총리는 기업 기(氣) 살리기에 나서더라도 공정위와 금감원은 엄격한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

기업은 자본주의의 꽃이고, 기업들이 잘돼야 나라 경제가 잘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기존 기업들의 편을 들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게 친(親)기업은 아니다. 오히려 기득권을 지나치게 보호하면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는 것을 막고 봉건적인 세습경제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

하청업체 착취, 일감 몰아주기, 제왕적 지배구조…. 시장에서의 공정 경쟁을 막는 이런 행위들은 규제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로 1000여 명이 사망해도 소비자들이 일일이 피해를 증명해야 하고, 회삿돈을 개인 돈처럼 사용해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게 한국이다. 기업들이 좀 불편하고 불리하더라도 투명한 경쟁체제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친기업이고 친시장이다.

물론 경제는 현실이다. 기업의 투명성이나 지배구조를 개선하더라도 단칼에 혁명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명확한 시그널을 주되 기업들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사기도 고려해야 한다. 경제 활성화와 구조개혁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은 원래 어렵다.

다만, 시장과 기업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에 대해 “반기업”이라고 주장하는 일부의 잘못된 비난은 그만하면 좋겠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김상조 공정위원장#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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