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누군가의 이정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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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건호 서민금융진흥원 부원장
최건호 서민금융진흥원 부원장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서산대사의 선시 ‘답설야(踏雪野)’

서산대사(1520∼1604)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법명은 휴정(休靜)이고 법호는 청허(淸虛)이며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의 스승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묘향산에 머물던 서산대사에게 서신을 보내 나라의 위기를 알렸고 서산대사는 전국의 사찰과 승려들에게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격문을 보내 의승병(義僧兵)들이 도처에서 일어나도록 했다. 또 직접 승병을 일으켜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그의 나이 73세. 고령이었음에도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친 서산대사의 숭고한 뜻은 우리가 가슴에 담아야 할 이정표다.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은 공주 마곡사에 은신하던 때에 서산대사의 선시 답설야를 알게 됐다. 이후 어려운 결단을 할 때마다 이 시구를 마음에 되새겼다고 한다. 특히 남북 분단 전후에는 더욱 그러했다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그의 삶 자체가 바로 이 시의 주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 내디딘 한 걸음은 눈 위의 발자국처럼 그대로 남아 길을 밝혀주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에 있어서 늘 겸손한 마음으로 정도를 걸어야 하며 자신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어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다.

최건호 서민금융진흥원 부원장
#서산대사 선시#답설야#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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