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70대의 글씨체가 똑 같다? ‘칼을 든 선비’ 심산 김창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8일 18시 19분


코멘트
10대와 70대의 글씨체가 똑 같은 사람이 있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오랜 감옥생활로 앉은뱅이가 된 심산 김창숙이다. 평생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의와 지조를 지킨, 선비의 상징적 인물이다. 심산은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의 주동자로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임정 때 이승만의 탄핵을 이끌었고 해방 후에는 이승만 ‘하야경고문’을 발표해 이승만의 실정과 독재를 신랄하게 꾸짖었다. 심산은 여든 넷의 생애를 온전히 조국의 독립, 통일정부 수립, 반독재 민주화에 바쳤다.

모서리에 강한 각과 마지막 필획이 꺾여서 꽤 길게 올라가는 특징은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의지가 남다름을 말해준다. 심산은 어릴 때부터 성기가 억세고 남에게 지지 않아서 함께 놀던 무리가 모두 꺼려서 피했다고 한다. “역적들을 성토하지 않은 자 또한 역적이다”라고 한 것이나 “나는 포로다. 포로로서 구차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치욕이다. 결코 내 지조를 바꾸어 남에게 변호를 위탁하여 살기를 구하지 않는다”라며 변호사의 변호를 거부한 것을 보면 그의 결기를 알 수 있다.

작은 키의 글씨들이 정사각형을 이뤄서 올바르며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냉정했음을 알 수 있다. 심산은 “성현이 세상을 구제한 뜻을 모르면 가짜 선비다”라고 말했고 유학 경서를 읽고 거들먹거리는 선비가 아니라 시대악과 처절하게 맞서 싸운 ‘칼을 든 선비’의 길을 갔다. 심산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대궐 앞에서 을사오적의 목을 벨 것을 상소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문 닫고 글만 읽을 때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국채보상운동과 국력자강운동에 뛰어들었고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했다. 정돈성과 규칙성이 두드러지는 것을 보면 말과 행동이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말년에 집 한 채 없이 여관이나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병상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지만 심산은 외롭지 않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