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취임 100일 ‘뚝심’이 안보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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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로 승부” 외쳤지만… 카풀-신용카드공제 등 우왕좌왕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홍 부총리는 취임 당시 “이제 성과로 말하고 성과로 승부내야 한다”며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을 공언했다. 각 경제부처가 ‘원 팀(one team)’이 돼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홍남기호’는 그동안 규제 샌드박스 추진 등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취임 당시의 일성에는 아직 못 미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경제부총리의 필수덕목인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 대책은 많았지만 ‘한 방’은 없었다

홍 부총리는 취임 직후 기존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경제활력대책회의로 명칭을 변경했다. 10차까지 열린 이 회의에서는 ‘규제 샌드박스 및 규제 입증책임 전환 추진계획’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 ‘제2 벤처붐 확산전략’ 등 30여 개 정책을 생산해냈다.

하지만 해당 정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각 부처에서 이미 발표했던 대책을 다시 정리한 ‘재탕’이 눈에 띈다. 6일 내놓은 ‘제2 벤처붐 확산전략’은 2017년 중소벤처기업부의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과 흡사하다. 신산업 인력 양성을 위해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를 설립하겠다는 방안은 지난해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추진해오던 대책이다. 그런데도 ‘데이터·AI 경제활성화 대책’(1월 16일), ‘ICT 산업 고도화 및 확산전략’(1월 30일)에 2주 간격으로 등장했다.

‘뚝심’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9일 부총리로 내정된 당일 홍 부총리는 카풀 문제에 대해 “선진국에서 하는 서비스면 한국에서도 못 할 바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2월 15일 최고경영자(CEO) 혁신 포럼에서 “이해 당사자 간 타협이 우선”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홍 부총리 발언에 “비상식적”이라며 직격탄을 날렸을 정도다.

한 정부 관계자는 “홍 부총리 취임 뒤 성과를 강조하며 각 부처에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어떻게 매번 새로운 대책을 내놓겠느냐”며 결국 기존 대책을 재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의 경제구조를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소신이나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 “대안 없이 말 앞세운다” 내부 지적도

혁신성장과 민간 활력 대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홍 부총리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파급력이 큰 사안에 대해 정치권 반응이나 여론에 따라 기존 입장을 바꾸는 등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대표적이다. 4일 납세자의 날 축사에서 홍 부총리는 “축소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근로소득자에 대한 사실상의 증세”라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12일 기재부가 “일몰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고 13일 일몰을 대선이 있는 2022년까지 3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일몰을 1년 연장할 당시 제도를 재검토하기로 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증권거래세 인하 문제 역시 1월 초 세법 시행령 개정안 발표 당시 기재부는 “주식 양도 소득세 전면 도입 이후(2022년)에나 검토가 가능하다”는 견해였다. 하지만 1월 15일 여당과 금융투자협회 간담회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증권거래세 인하를 공론화할 시점”이라고 발언한 뒤 홍 부총리는 “인하를 검토하겠다”며 물러섰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일감 몰아주기 규제 완화 등의 사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이 같은 상황에 기재부 내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부총리가 이슈가 될 만한 사안을 언급할 때는 반대 여론을 설득할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발언이 앞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홍 부총리가) 시장이나 여론 반응을 지나치게 살피는 것으로 보인다”며 부총리급의 인물이 발언했다 관철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정부에 대한 신뢰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측은 “합리적 문제 제기를 내부 검토를 거쳐 받아들이는 것은 정상적인 정책 협의 과정”이라고 밝혔다.

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송충현·최혜령 기자
#홍남기#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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