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거지모자에 힙색까지…구식문화 열광하는 10대들, ‘뉴트로’에 눈 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7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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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경기 스타필드 고양 휠라 매장. 패션에 민감한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붐볐지만 매장 분위기는 흡사 1990년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했다. 브랜드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촌스러운 디자인에 젊은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매장 입구에 전시된 신발 모형도 최신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모습이었다. 마네킹은 20여 년 전 유행한 벙거지모자도 모자라 커다란 로고가 새겨진 힙색(hip-sack)까지 허리에 차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재(아저씨)패션’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법한 구식 디자인 상품들이 최근 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에 태어난 10대들이 직접 경험하지도 못한 1990년대 문화에 열광하는 ‘뉴트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뉴트로는 ‘복고(Retro)’와 ‘새로움(New)’을 합쳐 만든 신조어다. 중·장년층에겐 과거의 아련한 추억이었던 복고가 젊은이들에겐 새롭고 신기한 아이템으로 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패스트푸드점 광고에는 남자 주인공(김영철)이 점원에게 ‘4딸라(4달러)’라고 외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10, 20대 사이에서 패러디 영상까지 만들어지며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새로운 유행어 같지만 이 광고의 모토가 된 건 2002년 방영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을 맡은 김영철이 임금협상을 하며 미군에게 호기롭게 소리쳤던 대사다. 광고가 인기를 끌면서 원래 드라마 장면도 수십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1980년대에 유행한 8비트 게임 콘셉트로 제작된 한 건강식품회사 광고도 동영상 조회수가 460만 회를 넘어섰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옛 게임에 추억을 가진 기성세대 뿐 아니라 이를 전혀 모르는 10, 20대가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게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뉴트로 문화가 빠르게 퍼지면서 관련 상품 매출도 크게 늘고 있다. 17일 온라인쇼핑몰 티몬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중순까지 힙색, 벨트백 등 1990년대 유행했던 복고풍 상품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0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벙거지모자의 판매량도 158% 늘었다. 큰 브랜드 로고의 옛 디자인 상품을 잇달아 선보인 휠라코리아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3573억 원으로 전년 대비 64.3%나 늘었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10, 20대 고객을 중심으로 뉴트로 관련 상품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면서 “이들에겐 생소한 디자인과 높은 가성비가 판매 증가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신 기술 경쟁이 치열한 전자제품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티몬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중순까지 폴라로이드카메라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저화질의 레트로 게임기도 70% 늘었다.

뉴트로가 유행하는 것은 최신 유행에 대한 요즘 세대의 피로감과 옛 문화에서 느끼는 호기심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최근 커다란 로고가 박힌 힙색과 일력(日曆)을 구입한 김성진 군(18)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것들이라 호기심이 생겼다”면서 “특이하기도 하고 매일 달력을 하나씩 뜯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을 경험한 10대들이 최신 기술에 느끼는 피로감들이 구식 제품에 대한 선호로 나타난 것 같다”면서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이지만 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새로운 것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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