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오성윤]흡연자도 비흡연자도 괴롭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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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윤 잡지 에디터
오성윤 잡지 에디터
나는 여행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묘미란 일장춘몽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다만 몽상이 때로는 행복에 닿기까지 하니, 백미는 역시 상대와 내가 동일한 경험을 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다.

“거길 갔어요? 거긴 보통 잘 모르는데.” “아 그거 맛있죠!”

소재가 일본일 때는 훨씬 수월하다. 좀 더 광범위한 조건 하나만 충족하면 되기 때문이다. “혹시 담배 피우시나요?” 흡연자들은 저마다 ‘흡연자의 천국’ 일본에서의 경험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영혼의 짝짜꿍을 칠 수 있다. 도쿄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며 피웠다는 당신의 이야기에 한 번, 오사카에서 스시 셰프의 손을 구경하며 피웠다는 내 이야기에 또 한 번. 행복은 두 배가 된다. 다만 최근에 생긴 변화가 있다. 아무리 열렬한 예찬도 그 끝은 애도의 형식을 띤다는 점이다. 최근 도쿄는 올림픽을 대비해 전면적이고도 엄격한 금연 정책들을 내놓고 있으며, 대다수의 공간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여론이 긍정적이어서 그 기조가 여타 도시들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나는 사나흘에 한 개비꼴로 담배를 피우는 ‘간헐적 흡연자’다. 문제 인식 차원에서, 본의 아니게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입장을 오간다는 뜻이다. 이를 테면 나도 대다수의 흡연자처럼 한국이 ‘흡연자의 지옥’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지난 10여 년간 혐연권에 대한 인식은 빠르게 발전해온 반면 흡연권에 대한 논의는 얼버무려진 채 진전의 기미조차 없으니까. 다만 이렇듯 급진적이고 일방적인 정책에도 한국이 ‘비흡연자의 천국’이 되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라 여긴다. 하루에도 수차례 곳곳에서 담배 연기와 꽁초를 맞닥뜨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 흡연자만 탓하기엔 으슥한 길목에서의 흡연은 너무 보편적 형태로 자리 잡았다. 흡연구역 확보나 올바른 흡연 방식에 대한 논의가 미비했던 탓이며, 두 문제의 뿌리가 같다는 뜻이다. 통계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금연구역 확대 이후 국민들의 간접 흡연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그럼 도쿄도 곧 이런 부작용에 직면하게 될까? 사정이 좀 다를 것 같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분연 정책(흡연 구역을 확보해 분리하는 정책)’은 모범적 국가 정책 사례로 회자된다. 저팬타바코의 거리 흡연시설 확충이나 올바른 흡연문화에 대한 캠페인도 성과를 내고 있다. 흡연소의 숫자든 품질이든 한국의 실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늘날 도쿄의 금연구역 확대에 대한 찬성 여론이 70%에 달한다는 사실은 비흡연자뿐 아니라 흡연자들 역시 사안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며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흡연’이 ‘갑질’이라는 보건복지부의 표현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올바른 흡연의 범주는 제시하지 않은 채 죄의식만 전가한다면 과연 긍정적 효과가 있을까. 흡연자가 설 자리를 없애면 흡연자가 사라질까. 설령 그렇다 해도, 시대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국민의 5분의 1을 갑자기 계도의 대상으로 삼는 게 적절한 일일까. 그 캠페인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 사회가 흡연 문제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흡연자의 시각에서 보든, 비흡연자의 시각에서 보든 말이다.

오성윤 잡지 에디터
#흡연자#비흡연자#흡연구역#일본 분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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