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던 맛이 안나와…개업 직전 2시간 만에 개발한 음식이 대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4일 14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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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 한마디 못하던 한국인, 프랑스 상륙 10년만에 4년 연속 미슐랭 셰프로

식당 주방에 선 이영훈 셰프. 리옹=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식당 주방에 선 이영훈 셰프. 리옹=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1920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빨간색 표지의 책,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되는 건 전 세계 요리사들의 꿈이다. 특히 미슐랭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는 매년 1월 말~2월 초면 모든 언론들의 관심이 리스트 발표에 쏠린다. 프랑스 리스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에 발표된다.

지난달 21일 발표된 ‘미슐랭 가이드 2019 프랑스편’에는 632개 별 식당 리스트가 실렸다. 미슐랭 별은 요리사에게 최고의 훈장인 동시에 받은 순간부터 유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의 원천이다. 올해 식당 75곳이 새로 별을 받았지만 57곳은 별을 잃었다.

18년 동안 최고 등급인 3스타 식당으로 꼽힌 ‘르 수케’의 셰프는 지난해 “나는 더 이상 압박 속에서 요리하고 싶지 않다”며 미슐랭에 리스트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2003년에는 3스타 셰프가 별을 유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올해 미슐랭 리스트 중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한 곳 있다.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에서 이영훈 셰프(35)가 운영하는 ‘르빠스떵’(Le passe temps·기분전환). 2016년 이후 4년 연속 원스타 식당으로 선정됐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음식으로 미슐랭을 받은 한국 셰프는 이 셰프가 유일하다. 불어 한 마디 못한 채 프랑스에 상륙한 지 10년 만에 프랑스 인들이 극찬하는 미슐랭 셰프가 된 그를 6일 그의 식당에서 만났다.》
식당 입구 미슐랭 별 밑에 선 이영훈 셰프
식당 입구 미슐랭 별 밑에 선 이영훈 셰프

-4년 연속 뽑혔다. 탈락의 압박감이 심하다는데 실제 그런가.

“미슐랭에서 아무런 연락이 안 오기만을 바랐다. 처음 별을 받았던 2016년에는 발표 사흘 전 미리 귀띔을 해줬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연락이 없으면 별을 유지하는 거고 오히려 별이 떨어지면 연락을 준다고 하더라. 미슐랭 홈페이지에 우리 식당 옆에 미슐랭 연도 숫자가 2018에서 2019로 바뀐 걸 보고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리옹은 미식의 도시로 유명하다. 미슐랭 선정되는 게 얼마나 힘든가.

“리옹에 공식적으로만 3000개의 식당이 있다. 이 중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은 16개다. 우리 식당 바로 옆 식당은 2스타를 받기도 하고 20년 가까이 별을 유지해왔는데 올해 떨어졌다. 미슐랭도 식당의 세대교체를 바라는 것 같다.”

-미슐랭 평가단이 매년 와서 평가를 할텐데, 누가 심사위원인지 전혀 짐작이 안 되나.

“매년 9~12월에 평가단이 온다고 하는데 전혀 알 수 없다. 당연히 식사비도 똑같이 내고, 꼬치꼬치 캐묻거나 하지도 않는다. 짐작조차 못하겠다.”

-미슐랭 별 식당으로 선정된 이후 뭐가 달라졌나.

“일단 손님이 늘어난다. 대기자가 많아졌다. 그 전까지 그렇게 까다로웠던 은행 대출도 보증 없이 바로 해주더라. 무엇보다 우리 식당에 대한 손님들의 리스펙트가 생긴다. 그 전까지는 동양 셰프가 프랑스 음식 한다고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 프랑스인들이 동네 자랑이라고 좋아한다.”

이 셰프는 집에 보관하고 있던 편지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셰프 알랭 뒤카스, 폴 보퀴즈가 보낸 축하 편지였다.

“처음 미슐랭으로 선정되자 전국 곳곳의 전설 같은 셰프들이 축하 편지를 보내왔다. 리옹에 있는 선배 미슐랭 셰프들이 출근하다가 문 두드리면서 축하해줬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셰프는 정확히 10년 전인 2009년 2월 프랑스에 첫 발을 내딛었다. 한국관광대학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음식점에서 일하던 그는 현지에서 음식을 배워야겠다는 갈증을 느꼈다.

“프랑스에 올 때 학교를 다닐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딱 한 가지 마음이었다.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를 먹어도 프랑스 본토에서 만든 감자튀김을 먹고 오자는 것, 그래야 한국에서 후회 없이 프렌치 식당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랑스 내에서 최고의 요리학교로 꼽히는 ‘폴 보퀴즈’를 졸업했다. 최고 요리학교의 교육법은 남달랐나.

“매우 체계적이다. 매주 한 개의 컨셉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실습하고 탐구한다. 특히 미슐랭 3스타 식당 폴 보퀴즈에서 인턴을 할 때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한국 인간문화재 격인 명장이 3명이 있는데 요리한 지 37년이 된 그들이 직접 고기와 생선을 굽고 소스를 만들었다. 음식 내보내기 직전 확인하고 몇 번 테이블 내보내라고만 지시만 했던 내가 경험한 한국 셰프와 달랐다. 월급쟁이 셰프인데도 음식에 대한 애정으로 흐트러짐 없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나도 매일 오전 8시에 직원 중 가장 먼저 출근하고 밤 11시 가장 늦게 퇴근한다. 거의 매일 혼자 가서 장을 보고 생선과 고기는 직접 굽는다.”

-‘폴 보퀴즈’ 졸업 후 바로 식당을 열어 오너 셰프가 됐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나.

“파리 미슐랭 2스타 식당에서 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내 이름 석 자 걸고 음식하고 싶었다. 아내에게 ‘가스렌지 2개, 테이블 한 개 놓고, 손님 딱 5명만 받더라도 내 식당 해보고 싶다’고 이해해달라고 했다. 내가 하는 프랑스 요리를 프랑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궁금했다”

그는 대학교 과선배인 부인 임소영(36) 씨와 2010년 결혼했다. 임 씨는 개업 이후 식당 홀을 지키며 주방을 책임지는 남편을 돕고 있다. 임 씨는 “결혼 후 처음 프랑스 올 때는 2, 3년 후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개업까지 한다고 하니 처음에는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식당을 개업하려면 초기 투자금이 필요했을 텐데.

“개업하기로 마음먹고 일 년 동안 돈을 빌리러 프랑스에서 은행이라고 쓰인 곳은 다 갔다. 그러나 한결같이 체류 자격도 확실치 않은 외국인 학생이 창업 하겠다고 돈 빌리러 온 경우는 처음 봤다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결국 2013년 7월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프랑스인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아쉬움에 슬펐다. 출국 직전 우연히 못 봤던 은행을 발견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고 그 곳 점장이 ‘전에도 당신 같은 중국인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다’며 대출을 해줬다. 인테리어는 친한 동생 두 명과 벽에 석고 바르는 것부터 모든 걸 인터넷 뒤져서 직접 했다. 전체 인테리어를 3500유로(액 450만 원)에 마쳤다.”

-지금 식당 인테리어는 모던한 분위기로 고급스럽다.

“미슐랭 별 식당으로 선정되자 모든 프랑스 은행이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더라. 추가로 돈을 빌려 다시 인테리어 한 거다.”

-연고도 없고, 평판도 없는 동양인 셰프가 프렌치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손님은 제법 왔나.

“2014년 4월11일 개업식 날 점심 첫 손님을 잊을 수가 없다. 40대 후반 여성 둘이 들어왔다. 메뉴판을 보더니 아내를 불러서 대뜸 ‘초밥을 먹으러 왔는데 왜 없냐’고 했다. 내가 홀에 나가서 ‘여기는 아시아 레스토랑이 아니라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했더니 ‘당신 아시아 사람이니까 만들어줄 수 있지 않냐, 좀 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만들어줬나.

“돈이 급할 때니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정말 초밥 재료가 없어서 돌려보냈다. 돈이 급해서 공사 끝나고 다음날 바로 가게를 열었다. 그래서 테스팅을 못하고 메뉴를 개발했다. 그런데 막상 개업 당일 만들어 보니 생각한 맛이 아니었다. 몇 시간 후면 손님이 오는데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손에 땀이 나고 몸이 떨렸다. 오늘 못 해내면 내일도 못 해낼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모든 직원을 주방에서 다 내보내고 혼자서 다시 메뉴를 개발했다. 그 절실함에 두 시간 만에 내놓은 음식이 대박이 났다.”

-개업한 지 얼마 만에 이 식당에 손님이 꽉 찼나.

“26석이 만석이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리옹의 유명한 음식 블로거가 들르더니 이어서 지역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됐다. 5월 첫 번째 주 토요일 그러니까 개업 3주 만에 만석이 됐다. 진짜 소름이 돋았다.”

그의 식당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다. 음식은 제철 음식으로 매번 달라지고 손님들은 코스에 나오는 음식 수만 시킨다. 메뉴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이영훈 셰프‘ 이름을 믿고 손님들이 오는 셈이다. 그의 시그니처 메뉴는 멸치 육수에 넣은 푸아그라. 맛을 보니 개운한 한국 국물 맛이 느껴졌다.

-프랑스 음식에서는 보기 힘든 맛이다.

“멸치 육수와 간장은 푸아그라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며 밸런스를 잡아준다. 오늘 또 다른 대구 음식에는 동치미 국물이 사용된다. 한국 음식이 프랑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프랑스에서 식당을 연 첫 미슐랭 한국인 셰프라는 타이틀, 원래부터 꿈꿨었나.

“공부는 1등을 못했는데 요리는 꼭 1등을 하고 싶었다. 2010년 결혼식을 하러 한국에 간 적이 있다. 집에서 TV를 보는데 광고에 에드워드 권 셰프가 나왔다. 그를 아느냐고 어머니께 물었더니 ‘알지 그럼. 우리 아들도 요리하니까 언젠가는 TV에 한 번 나오지 않을까’ 말씀하시더라. 프랑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부모님 위해 TV에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미슐랭 본고장에서 별을 받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 돈을 1등으로 벌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1등을 해봤다고 생각한다.”

-매년 미슐랭 별을 못 받으면 어떡하나 불안하지 않나.

“첫 해에는 다른 미슐랭 레스토랑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쫓아가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컸다. 이제는 지금처럼만 하면 손님이 내 노력을 알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 변함없이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자, 그러다 별에서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손님은 여전히 내 음식을 사랑해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개업 초기에는 장 볼 때 아내가 사과가 먹고 싶다고 하면 ‘사과 몇 개 안 먹으면 식당 젓가락을 살 수 있다’고 못 먹게 하고 그랬다. 아내가 사과를 마음껏 먹게 된 것만도 기쁜 일이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것 미슐랭 2스타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꼭 받아보고 싶다. 미슐랭 별을 받고 한국에 갔을 때 친분이 없는 셰프들까지 ‘프랑스에서 한국인 셰프도 별을 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감사하다’는 격려를 해줘서 너무 감사했다. 내가 별 두 개를 받으면 또 다른 한국 셰프가 별 받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인 셰프 누군가가 프랑스에서 별을 받으면 당장 식당 문 닫고 가서 밥과 술을 사주며 축하해주고 싶다.”

-조만간 비빔밥 가게를 리옹에서 오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옛날부터 한국 식당을 꼭 해보고 싶었다. 한국 음식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관심이 엄청 늘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비빔밥이니까 종류별로 특색 있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며 살고 싶다.”

리옹=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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