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9/단편소설 당선작]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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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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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원


창밖에는 승용차가 멈춰 서 있었다. 정호의 눈높이에 닿는 작은 창 너머로 보이는 차는 헤드라이트를 꺼둔 채 공터 한구석에 있었다. 차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컨테이너 하우스의 바깥뜰에는 하얀 눈가루가 엷게 덮여 있었다. 정호는 물을 끓이기 위해 가스레인지 위에 주전자를 올렸다. 주위가 온통 논밭인 외곽 지역인 이곳에는 이따금 저런 차들이 지나가곤 했다.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게 검붉거나 차체가 낮은 차들. 앞으로, 앞으로만 달리다가 잘못된 장소에 온 것처럼 차들은 그의 집 앞에서 서서히 속도를 늦추다가 멈추곤 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차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위해 숨을 죽이는 것처럼 제자리에 머물다가 다시 시동을 켜 떠났다. 정호는 마당에 개라도 묶어둘까 싶었지만 출근길에 지나가면서 다른 집 개들을 볼 때마다 마음을 접었다. 그는 두 도의 경계선 근처에 있는 폐차장에서 오전반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 개들은 논밭 사이로 그가 타고 있는 봉고차를 향해 컹컹 짖었다. 개들은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채 달리는 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돌아오는 길엔 해가 일찍 떨어져 주위가 온통 캄캄했지만 인기척을 알아챈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점점 사라져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고 차나 한잔 마시면서 잠자리에 들 요량이었다. 아직도 바깥에 있는 차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슬며시 걱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정호는 계속해서 창밖을 지켜봤다. 그 순간 중키에 마른 몸의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남자는 어깨를 옹송그린 채 몸을 떨었다. 그는 잠시 주위를 서성이다 방금 내린 차 문을 당겼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차 주변을 여기저기 확인하더니 이쪽으로 비척비척 걸어오기 시작했다.

정호는 정기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목뒤만 주물렀다. 이 시간에 이곳까지 동생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마당을 가로질러 이쪽으로 가까이 온 끝에야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문을 열자 눈밭의 빛이 반사된 정기의 얼굴은 새하얗다. 마지막으로 본 두 달 전보다 말라 보였다. 하지만 살이 좀 빠진 것만 빼면 여전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형.” 정기는 그를 보자마자 반갑게 웃었다. 그는 “웬일이냐, 네가” 하고 정기가 내민 손을 반갑게 잡았다가 슬며시 놓았다. 그는 한참 동안 멈춰 있던 차를 생각했다.

그들은 검은 비닐 소파에 나란히 붙어 앉았다. 맞은편 상자에 올려둔 텔레비전에서는 예능 재방송이 작은 소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기는 보리차를 마시며 뚫어져라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정호도 그를 따라 방송을 보려 했지만 출연자들이 당최 누구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엄마는?”

정호는 정기를 향해 물었다. 정기는 이혼 후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엄마는 그냥 뭐.” 정기는 짧게 웃었다. “여전하시지.” 그는 계속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호는 정기의 미적지근한 대답이 꺼림칙했다. 이런 늦은 밤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홀로 둬도 되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온 건지 묻고 싶었지만 정기가 입은 낡은 모직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무릎 부분이 찢어져 있었다.

“말씀드리고 나왔어. 괜찮아.” 정기는 드러나 있는 무릎을 긁으며 말했다.

“말씀드리고 나왔다고?” 정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다시 물었다.

“그냥 문 앞에서 잠깐만 나갔다가 올게요, 하고 말하는 거지.” 정기가 말했다.

엄마는 오후 다섯 시만 넘으면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에 빠져든다고 했다. 그는 혼곤히 자고 있을 엄마를 향해 갔다 올게요 하고 속삭이는 동생을 떠올렸다. 엄마가 깨지 않게 낮게, 아주 낮게 닫힌 문 앞에서 재빠르게 속삭이는.

“요샌 엄마가 자고 있을 때 이렇게 나와. 처음엔 집 앞만 산책했는데 이제는 그냥 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녀. 그러다 멀리, 점점 더 멀리 가게 되더라.”

그는 몸을 뒤로 젖히며 한번은 주문진까지 가서 밤바다를 보고 왔는데도 엄마가 여전히 자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호는 그래서 그가 여기까지 온 건가 하고 생각했다. 점점 더 멀리, 더 멀리 달리다 자신에게까지 오게 된 게 아닐까.

“사실은.” 정기는 바닥에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폐차할 게 있어서 왔어.”

“폐차?” 정호는 동생이 자신에게 찾아온 이유 중 가장 뜬금없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정기는 바깥을 힐끗 가리키더니 “친구가 준 차인데, 중고에서도 안 팔린대. 마침 형이 일하고 있다고 하니까 맡겼는데 사실 그동안 내가 타고 다녔거든” 하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전화가 와서 급하게 폐차하고 나서 고철값을 달라고 하지 뭐야.” 정기는 툴툴거렸다. “그래서 온 거야, 그래서.”

그렇구나. 정호는 가르마를 중심으로 흰머리가 퍼져가는 정기의 정수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새벽 세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두 시간만 기다리면 정호를 태울 봉고차가 올 터였다. 정기는 그 차를 따라 폐차장으로 갔다가 일을 본 후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가면 될 터였다. 서두르면 점심 전까지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정호는 혼자 남아 있을 엄마를 떠올렸지만 정기 앞에서 말을 꺼내진 않았다. 너 빨리 가봐야 하지 않니. 여기 이러고 있으면…. 그는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정기는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파묻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그의 무료한 얼굴 위로 텔레비전의 화면에서 비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소파 근처에서 정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정호는 휴대폰을 찾기 위해 아무렇게나 구겨 둔 이불을 들어 올렸다. 이불 구석에 있던 낡은 휴대폰이 떨어졌다.

“어, 자넨가?” 전화를 받자마자 반장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지금 어디 있는가?”

그는 집이지요, 하고 답했다. 정기는 궁금하다는 듯 차분한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정호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지금 갈 수 있는가? 사장이 전화가 왔어. 시시티비에 누가 자꾸 보인다는구먼.”

폐차장에 들어와 부품이나 고철 따위를 훔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펜스를 치고 자물쇠를 걸어도 사람들은 희한하게 어디를 통해서든 들어왔다. 반장은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그에게 현장으로 가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차로 4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바깥에 있는 차를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길을 아는 정호가 운전대를 잡았다. 번거롭게 조수석에 앉아 이 길, 저 길을 가리키느니 이편이 나았다. 무엇보다 주위가 앞으로 한 걸음도 못 갈 만큼 온통 캄캄했다. 어쩌다 운동 삼아 집 앞이 아닌 조금 떨어진 거리에 내려달라고 부탁해 내릴 때도 있었는데, 질퍽한 땅을 걷는 자신의 걸음 소리만 들릴 뿐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풀벌레 소리조차 없이 자신이 내뱉는 숨소리에만 의지하며 농밀한 어둠 속을 걸을 때마다 그는 자신이 한 마리의 개가 된 것 같았다. 저 멀리 누군가 다가오는 불빛을 향해 컹 하고 짖게 되는. 정기는 매끄럽게 운전대를 돌리는 그를 보면서 감탄했다. 길 자체가 폭이 좁아 몇 번이고 도랑으로 빠질 뻔했다는 정기의 말과 달리 정호는 후진 한 번 만에 빠져나와 제대로 길을 찾았다. 좁은 도로를 달릴 동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마을 입구를 벗어나 포장된 국도가 나오자 정기는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과 함께 멀리서 축사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좋다.” 정기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양옆으로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들이 스쳐 지나갔다. 들판에는 쌓아둔 짚더미가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찬바람이 섬찟하게 오른뺨에 닿을 때마다 정호는 창문을 닫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정기는 여전히 바깥을 보며 스읍, 스읍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한동안 논밭들을 지나쳐 달리자 굴다리가 나왔다. 그대로 굴을 통과하면 이전의 풍경과 비슷한 또 다른 마을이 나왔다. 다리 위에 있는 도로를 타기 위해선 좌회전을 해야 했다. 정호는 잠깐 망설이다 좌회전을 해 위쪽 도로를 탔다. 아까의 길보다 포장된 길이 펼쳐졌다. 다만 산을 깎아 만든 길이라 커브가 많았다.

“좌회전인데 신호 안 받아도 돼?” 정기는 팔을 쓸며 창을 닫았다. 희미하게 나기 시작했던 풀냄새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슨.” 정호는 피식 웃었다. 신호등 따윈 없었다. 이곳은 신호 없이 좌회전을 하는데도 한 번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정기는 몸을 숙여 히터의 온도를 높이고 다시 창밖만 바라보았다. 검은 나무들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죽 솟아난 나무들 쪽을 힐끗 보며 정호는 커브를 돌기 위해 조심스레 운전대를 꺾었다. 그의 몸이 정기를 향해 쏠렸다.

“이대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 몸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정기가 불쑥 말했다.

“뭐?” 정호는 운전대를 조금 움켜잡았다.

“이대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고. 달리기 좋잖아, 여기. 신호 안 지켜도 되고.” 그의 말에 정호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들은 모두 앞을 보았다. 둥그런 헤드라이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있었다. 그 일렁이는 자국을 넘어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후다닥 그들의 앞을 덮쳤다. 정호는 급하게 운전대를 옆으로 틀었다. 반동 때문에 몸이 뒤로 젖혀졌다. 그는 얼른 브레이크를 밟았다. 바퀴가 힘차게 돌다 멈추면서 요란한 소리가 퍼졌다. 정호는 욕설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다행히 반대쪽 차선에서 오고 있는 차는 없었다. “괜찮아?” 그가 정기에게 물었지만 정기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무언가를 유심히 보는 정기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는 백미러를 확인했다. 도로 한복판에 무언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후진등과 반사등이 부딪혀 희미하게 빛 번짐이 있었지만 무언가 보였다. 언뜻 봐선 야생 짐승인 것 같았다. 그것은 정확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빛 속에서 어슴푸레한 윤곽이 보이자마자 놈은 순식간에 재바르게 산으로 달아났다. 가느다란 뒷다리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에이 씨.”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정호는 핸들을 돌려 차선을 바꿨다. 정기도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고라니인가.” 정기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정호는 짧게 대답하면서 이따금 한밤중에 저 멀리서 눈빛을 쏘아대며 논밭 위를 겅중겅중 뛰며 사라져가던 고라니를 떠올렸다. 흔한 일이었다. 정기는 창문을 내렸다. 다시 세찬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사실.” 정기는 창밖으로 팔을 내밀었다.

“아까도 이쪽으로 오는 길에 고라니를 봤어.” 그는 다시 습,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쳐버렸어.”

“뭐?” 정호는 운전대를 놓칠 뻔했다. 마침 다시 왼쪽으로 커브를 돌아야 했다. 그는 속도를 늦추면서 방향을 돌렸다. 정기의 어깨가 자신 쪽으로 쏠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정호는 정기를 보며 물었다. 다시 길은 앞으로 죽 뻗어 있었다. 정기는 턱을 받친 채 검은 우듬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날뛰며 오더니 내 쪽으로 박아버렸어.” 정기는 작게 중얼거렸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정기의 이마에 있는 앞머리가 흔들렸다.

“그대로 놔둘 수도 없고 해서… 갖고 왔어.” 정기는 뒷좌석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트렁크 안에 그 짐승을 넣어두었다는 말이었다. 정호는 “그런 걸, 왜……”라고 더듬어 말했다. 정기는 그냥, 하고 대답했다. “형이 좋아할 거 같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 저런 걸 먹는 사람들이 있지 않아?” 대수롭지 않은 정기의 말에 그는 그건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폐차장 한구석에 있는 낡은 드럼통을 떠올렸다. 가끔씩 인부들과 모여 삼겹살을 굽거나, 목살을 사다 구워 먹은 적이 있긴 했지만 고라니를 먹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한 번 그런 적이 있다고 들은 것 같았다. 염소나 사슴이 별미라고 일부러 구해다 먹는 판에 그런 고기도 나름 맛이 괜찮다고도 했다. 글쎄다. 정호는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쿵. 차 뒤편에 무언가가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것이 살짝 들렸다가 떨어지는, 어딘가 귀퉁이에 닿는 소리. 그는 페달을 조심스럽게 밟았다.

“근데 고라니가 맞긴 했니?” 정호는 말을 하면서도 아까 본 짐승을 말하는 건지, 아님 정기가 갖고 온 짐승을 말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글쎄.” 정기는 얼굴을 찡그렸다.

“어쩌면 고라니가 아닐지도 모르지.” 정기는 부러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했다. “고라니인지. 뭔지. 어쨌든 정말 요상하게 생겼어. 정말… 이상했어.” 그리고 정기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 도로는 좀 더 폭이 넓어진 채 시원하게 앞으로 죽 뻗어 있었다. 논밭으로도 개간하지 않은 토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전봇대 사이에 묶인 임대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는 신호를 받을 때마다 트렁크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귀 기울였다. 희미하게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뭔가가 있기는 했다. 갑자기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은 무언가가 길게 늘어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달릴 때마다 그런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채 그는 속도를 냈다. 새벽이 되면서 차츰 주위가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저 멀리 또 다른 신호등이 보였다. 그 아래 정지선에는 낡은 트럭이 멈춰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속도를 줄여 트럭 뒤에 멈춰 섰다. 서서히 페달에서 발을 떼면서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신호를 기다리며 이제는 자신이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었다. 가까운 풀밭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큼. 정기가 기침을 터뜨렸다. 이내 신호가 바뀌었다. 앞차는 시동만 켠 채 제자리에 멈춰 있을 뿐 앞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창문을 열고 소리라도 치겠으나, 어차피 주위엔 다른 차도 없는 데다 급할 것도 없었다. 사실 어쩐지 폐차장에 가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뒤편에서 이리저리 쿵쿵 부딪혔던 고라니를 마주하기가…. 정기는 이대로 괜찮은 건지 느긋하게 앞차를 기다렸다. 정호는 짧고 강하게 클랙슨을 눌렀다. 차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그들은 닫혀 있는 트럭의 녹색 방수포를 바라보았다. 정호는 슬그머니 정기의 눈치를 살폈다. 정기는 태연하게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 보다가, 손잡이를 잡았다가 하며 여유를 부렸다. 정호는 홀로 남아 있을 엄마를 떠올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엄마를 본 건 두 달 전이었다. 젊었을 때와 지금의 엄마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도전적인 눈빛, 상대방을 질릴 때까지 쳐다보던 호전적인 눈이었다. 정호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엄마도 덩달아 일어나려고 했다. 정호는 앉아 계세요, 하며 엄마를 앉히려고 했지만 엄마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두 주먹을 쥐고 일어나려고 했다. 늘어난 티셔츠 사이로 뼈들이 가지런한 앙가슴이 보였다. 뼈밖에 없는 손목을 잡는데도 도저히 엄마를 앉힐 수는 없었다. 그는 안간힘을 썼다. 노인에게서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덥석 잡힌 그의 두 손목이 얼얼했다.

“엄마는 괜찮으시지?” 정호는 여전히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트럭을 보며 말했다.

응. 정기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어제는 요구르트를 드렸는데 누워서 드시겠다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빨대에 꽂아서 드렸는데, 먹는 게 반, 흘리는 게 반이야. 일어나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 밑바닥밖에 남지 않아서 더 이상 안 나오는데도 계속 달래, 나머지를 달래. 일어나야 마저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듣지를 않아. 턱밑까지 흘러내리는데도 계속 빨더라고.”

“이거 보라고.” 그는 자신의 앞섶을 내밀어 정호에게 보여줬다. 금방이라도 가까이 닿을 듯 옷자락을 내밀었다. 앞섶에 허연 얼룩이 크게 번져 있었다. 정호는 어쩔 수 없이 코를 갖다 댔다. 달큰하다기보다는 이상하게 묵은 냄새가 났다. 그 순간 언뜻 옷자락 안쪽에 더 크게 번져 있는 자국이 보였다. 갑자기 앞차가 후진등을 깜박였다. 정호는 조심스레 방향을 틀어 옆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차를 몰면서 트럭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그대로 차를 몰았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그들은 다시 침묵한 채 각자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할 말이 없었다. 얼마 안 되는 요구르트를 밑바닥까지 마시겠다는 노인의 삶에 대한 집착이 자신에게까지 뻗쳐오는 것 같았다. 정호는 서늘한 정기의 옆모습을 보며, 어쩐지 코에 비해 턱이 유달리 작은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잘생겼던 인상이 조금씩 볼품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뭐랄까 빈 구석이 많아 보였다. 가진 게 그다지 많지 않은, 결여가 보이는 얼굴. 아직 서른여섯이면 젊은 나이일 텐데 멀찍이 어딘가를 한 바퀴 뛰고 온 얼굴이었다. 정호는 정기가 항상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지방을 전전하며 생산직에서 일하기도 했고, 친구를 따라 필리핀에 조그마한 오토바이 가게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엄마의 옆에, 어렸을 때부터 살던 그 다세대 빌라 안으로. 결국 가장 멀리 떠난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는 어쩐지 정기를 제대로 마주 보지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쿵. 과속 방지턱을 넘는 바람에 트렁크 안에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다시 어딘가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안에 있는 고라니는 저 안에서 이리저리 조금씩 구르고 있을 터였다.

“왜 저런 걸 받았니?”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기는 그를 빤히 보았다. 정호는 더 참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어쩔 수 없었어, 형.” 정기가 말했다.

“저걸 받아 버리지 않고는 갈 수가 없었어. 도저히 앞으로 갈 수 없었다구.”

정기는 아무런 높낮이 없이 차분히 말했다.

정호는 차를 갓길로 틀었다. 아까부터 초조한 탓인지 소변이 마려웠다. 논밭과 도로 사이로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었다. 그곳이 제일 적당한 장소로 보였다. 정기는 갑자기 방향을 트는데도 별말이 없었다. 막상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가니 요의가 가셨다. 새벽의 선선한 냄새가 났다. 그는 가만히 숨을 내쉬며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았다. 들판 위로 정리하다 만 찢어진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어딘지 쓸쓸한 곳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그들을 차에 태워 이런 곳에 내버려 두고 가버리곤 했었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정처 없이 걷다 보면 헤드라이트를 켠 채 기다리는 차가 보였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그들은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그러다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먼 곳에 남겨지곤 했었다. 컹. 불현듯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찢어진 비닐하우스 앞에서 백구 한 마리가 이쪽을 보며 짖고 있었다. 백구는 잔뜩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긴 주둥이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정호는 다시 몸을 돌려 차에 타려고 했지만 언뜻 백구의 뒤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자그마한 황톳빛 강아지가 두어 마리가 어미 뒤에 숨어있었다. 그는 슬그머니 웃었다. 컹컹. 백구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개의 두 눈이 섬광처럼 빛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어쩐지 묘하게 안심이 됐다. 정기가 말한 요상한 고라니가 떠올랐다. 별것 아니었어. 정호는 차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소변 보려고 했던 거 아니야?”

정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는 그보다 방금 본 것들을 얘기해주고 싶었다.

“저기 개가 있어. 새끼도 있더라.”

정기는 그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개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없는데?” 아니 있어. 저기 있다구. 그는 정기에게 개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우리가 봤던 게 개일지도 몰라.” 정호의 말에 정기는 이마를 찌푸렸다. 말하고 보니 정말 이 주변에는 개들이 많았던 게 떠올랐다. 집을 나온 개들도 들개가 되어 이리저리 논밭 사이로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정기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정호는 안타깝게 찢어진 비닐하우스를 보았다. 저기에 있어. 그는 비닐하우스를 가리켰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구. 곧 나올 테니까.”

그의 말에 정기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 히터 바람을 맞았다. 따뜻한 기운이 얼굴에 닿는 것과 달리 밖에선 세찬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이따금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렸다 사라졌다.

똑똑. 누군가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들은 화들짝 놀랐다. 정호 쪽에서 검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이드미러를 보니, 뒤에 흰색 트럭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호는 창문을 내렸다.

“차 좀 비켜줘요.” 나이가 지긋하게 든 남자가 말했다. 어두운 밤공기 속에서 남자의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남자의 턱 끝에 있는 수염의 군데군데가 희끗했다.

“여기서 장사하는 차니까, 계속 여기 있지 말고 자리 좀 비켜줘요.”

정호는 알겠다고 한 후 기어를 바꾸었다. 일단 후진을 하려면 뒤에 있는 트럭이 더 뒤로 비켜줘야 했다. 그러나 정작 남자는 자신의 차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정호는 툴툴거리며 남자가 트럭에 올라탈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차가 뒤로 빠지자, 정호는 후진을 했다. 그리고 공터 쪽이 아닌 국도 쪽으로 차를 몰았다.

“잠깐만.” 정기는 그대로 가려는 정호를 말렸다. 정호는 브레이크를 밟은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트럭이 매끄럽게 그들이 있던 자리로 들어와 멈췄다. 뒤에는 녹색 방수포 자락이 닫혀 있었다. 아마 도로변 한구석에서 과일이나 과자 따위를 파는 차인 것 같았다.

“잠깐만 기다려, 형.” 정기는 그 말만 한 채 밖으로 나갔다. 정호는 한겨울에도 맨 무릎이 드러나는 바지를 입고 비적비적 걸어가는 동생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정기는 트럭으로 가더니 방수포 안으로 허리를 숙였다. 도대체 무엇을 사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저런 곳에서 사야 하나 싶었다. 잠시 후 검은 비닐봉지를 든 정기가 차로 돌아왔다. 그는 바스락거리는 봉지를 자신의 다리 근처에 두었다.

“배추를 팔더라고.” 배추를? 정호는 저런 차에서 많고 많은 야채 중 배추를 팔기도 하나 싶어 의아했다. 그냥 배추가 아니야, 겨울 땅에 얼어붙었다가 볕에 녹았다가 하는 배추래. 그런 배추가 질기면서도 맛있어. 정기의 말에 그래, 그렇구나, 그런 배추도 있구나 싶었다. 정호는 조금씩 페달에 올려둔 발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형도 봤지? 저 사람 다리 하나가 없는 거.”

정기의 말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 유심히 봤는데 바지 한쪽이 비어있던데.”

그래서 지나치지 못했으리라. 정호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폐차장으로 가는 익숙한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정기는 자신과 달랐다. 자신과 달리 비겁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정기가 엄마의 곁에 있는 건지도 몰랐다.

“배추와 같이 끓여 먹으면 맛있을 거야.”

정기는 봉지를 열어 보여주었다. 검은 봉지 안에 싱싱한 배춧잎이 가득했다. 정호는 정기가 트렁크 안에 있는 고라니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 필리핀에서 식당 일도 했었거든. 내가 해줄게, 형. 소주랑 같이 마시라고.”

그는 금방이라도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손목을 돌렸다.

저 멀리 폐차장 간판이 보였다. 정호는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입구로 차를 몰았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타이어가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정기는 신기한 듯 앉은 자리에서 주변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정호는 꺼림칙한 마음으로 폐차장 안에 있는 작업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 차를 세웠다. 주변에는 작업하다 만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밖으로 나와 스트레칭을 했다. 뻐근했던 목 뒤의 근육들이 늘어나면서 소름이 돋았다. 찬 공기 속에서 입김을 내뱉으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고즈넉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어딘가 부서지거나, 한눈에 봐도 빛바랜 각기 종류가 다른 차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는 사무실 겸 휴게실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 쪽으로 갔다. 보통은 바로 그 옆에 있는 차고에서 부품을 떼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자동차의 앞 범퍼 같은 것을 떼다, 종류별로 분류했는데, 대충 쌓여 있는 고철들을 봐선 저번 주 작업량과 비슷해 보였다. 사장이 씨씨티비를 통해 봤다고 했던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 다녀간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

“형, 뭐해?”

정기는 뒤따라 그를 따라오며 말했다. “나 빨리 가야 하는데.” 정기는 그 말과 함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붉은색 철근으로 이루어진 폐차압축기가 보였다. 거대한 사각형 틀로 이루어진 기계는 형광색으로 바리케이드 모양이 표시되어 있었다. 지게차에 폐차를 싣고 그곳에 내려놓으면 압축판이 천천히 내려오면서 차를 으스러트렸다. 그렇게 압축된 차를 지게차로 실을 때마다 확실히 전보다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저기 뒤틀린 평평한 철근 덩어리.

하지만 지금 바로 차를 폐차할 수는 없었다. 이 일에도 나름의 절차가 있었다. 먼저 사무실에 들어가 차량 조회를 해봐야 했다. 그런 일은 보통 반장이 맡았는데, 이상하게 오고 있다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바로 일을 진행할 수 없다는 말에 정기는 실망한 눈치였다. 정호는 그를 오래 붙잡아 둘 수 없어, 자신이 우선 폐차할 차의 고물 값을 줄 테니 일단 갖고 가라는 말에 정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다리지 뭐….” 그는 타고 온 차의 윗면을 훑으면서 중얼거렸다. 기다리지 뭐…. 늘어지는 그의 말에 정호의 가슴 안에서 불안이 일렁였다. 그냥 자신에게 일을 맡기고 가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정기는 차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듯 폐차장 입구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오고 있다는 반장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는 운동화 앞코로 바퀴 옆 흙을 파며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었다. 굳이 차가 폐차되는 걸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갈 요량인 것 같았다. 정호는 문득 트렁크를 떠올렸다. 일단 차를 폐차시키려면 그것부터 꺼내야 했다. 정호는 차 뒤편으로 다가갔다. 그는 천천히 두 손을 트렁크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한쪽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어느새 입안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는 억지로 마른 침을 삼켰다. 퉁. 둔탁한 것이 그 안에서 뛰어올랐다. 그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퉁. 또다시 무언가가 들이박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살아있나 봐.” 그의 말에 정기는 오묘한 표정으로 트렁크를 쳐다봤다.

안에 든 것이 고라니든, 멧돼지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살아있다면 다른 문제 아닌가. 죽은 동물을 봐야 한다는 꺼림칙한 마음에서 나아가 혼란스러운 물음에 휩싸인 채 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둠 속에 뻗은 자신의 두 손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공 속에 머물러 있었다.

“기다리지 뭐.” 정기는 담담하게 말했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자구.”

어느 때보다 정기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래도…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트렁크 위에 손을 내렸다. 그래도 꺼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키를 눌러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트렁크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정기가 그의 팔을 덥석 움켜잡았다.

“기다리자니까.”

정기가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더는 추위를 참을 수 없었다. 마냥 바깥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난방을 틀고 기다리자 훈기가 차 안을 감돌았다. 트렁크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직 살아있을까. 정호는 그곳에서 가만히 숨을 내뱉고 있을,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을 고라니를 그려보았다. 그 짐승의 눈에 지금 무엇이 보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형, 기억나?” 정기는 갑자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에 이런 곳에 엄마가 우리를 버려두고 간 거.”

정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은 나만 버려두고 간 적도 있었어.” 그랬나? 정호는 아무리 떠올려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보다 어떻게 자신보다 어린 정기가 제대로 길을 찾아 왔는지 궁금했다.

“그건 기억 안 나.” 정기는 좌석에 몸을 파묻으며 말했다.

“다만 기억나는 건 저 멀리 사라져가던 엄마 차뿐이야. 형이 뒷좌석에서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버리더라고.” 그게 다야. 정기의 말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들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입구에서 하얀 트럭이 빠른 속도로 들어왔다. 전방등 불빛에 날벌레들이 모여드는 게 보였다. 반장의 차량인 줄 알았으나 어딘지 이상했다. 하지만 어딘지 낯이 익은 차였다. 갑작스러운 차량의 등장에 그들은 나가지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트럭은 폐차 사이에 주차하더니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십여 분쯤 흘렀을까,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절뚝거리며 내려왔다. 남자는 땅으로 뛰어내리듯 망설임 없이 훌쩍 뛰었다. 검은 패딩 아래, 면바지 한쪽 자락이 펄럭이고 있었다. 아.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상하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자의 다른 발은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절뚝거리며 방수포를 열었다. 배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어린 남자아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남자는 한쪽 발로 뛰면서 방수포를 활짝 젖혔다. 아이가 트럭 끝에 걸터앉았다. 남자는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더니, 익숙하게 모아둔 철물 쪽으로 뛰어갔다. 남자가 뛸 때마다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렸다. 남자는 철근들 사이에서 허리를 굽혀 고물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트럭 위에서 냉큼 내려와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꿇어앉은 채 손짓을 하며 아이를 밀었다. 아마 다시 트럭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추위 때문에 벌게진 얼굴로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주변으로 작은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마지못해 남자가 긴 철근 하나를 집어 들자, 아이가 남자를 도와 철근의 반대쪽을 잡았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트럭 쪽으로 철근을 옮겼다. 그들은 익숙하게 그것을 트럭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남자는 완강하게 아이를 다시 트럭 위에 앉히더니 혼자서 다시 철근을 향해 뛰어갔다. 아이는 트럭 위에서 걱정스럽게 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간간이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는 들어가 있어라. 괜찮아. 아버지가 다 할 테니. 정호의 귓가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남자는 아이를 그 자리에 앉혀둔 채 고물을 날랐다. 멀쩡한 아이의 두 다리가 트럭 끝에 길게 뻗어 있었다. 정호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 순간 정기가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정기가 조용히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나갈 수 없었다. 그들은 철근을 훔쳐가기 내내 절뚝거리는 남자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일을 마친 남자는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어느새 아이는 차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유유히 그대로 차를 몰아 밖으로 빠져나갔다. 트럭이 떠나고 난 후 그들 중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주변 풍경은 전보다 환해져 가고 있었다. 반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퉁.

트렁크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정호는 조금 전 꺼둔 시동을 다시 켰다. 그는 기어를 바꾸었다. 그리고 뒤쪽을 보며 조심스럽게 운전대를 돌렸다. 그는 저 멀리 폐차압축기를 향해 후진했다. 반장이 오기 전 작업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기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압축 작업을 끝낸 후 자신이 철근 판을 지게차로 옮겨 다른 것들과 같이 저 들판에다 버린다고 한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말이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는 어쩐지 동생의 눈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저기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 자신이 정기와 서로 끝까지 맞닿아 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은. 저 멀리, 압축기 너머 철근 더미 위에 서 있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개는 목을 웅크린 채 이쪽을 향해 컹 하고 짖었다.(*)


● 당선소감

완전한 세계는 없더라도 꿈꿔 보고는 싶어


언제부턴가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내가 지금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무한한 심연과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때로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고 있다. 언어라는 이 불완전한 것으로 한 사람의 마음을 잠깐이나마 둔중하게 울리는 일. 이것이 내가 가진 단 하나의 꿈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있다. 쓰는 일은 전적으로 혼자서 고독에 몸부림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도 끝까지 그 적막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에게 머리 숙여 존경을 보낸다. 진심으로 더 많은 분들과 함께, 오래도록 쓰고 싶다.

글을 쓰면서 참 많이 걸었다. 걷고, 또 걷고, 서늘한 여름밤과 동트는 겨울 새벽에도 걸었다. 쓰는 게 너무 무서워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내내 울면서 간 날들도 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렇게 걷고 싶다.

윤성희 김경욱 윤경희 권희철 선생님께 감사를. 그리고 주영 서원 소희 승아 금숙 언니들과 혜빈이에게도 나를 참아 주어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가장 초라한 내 모습이라도 기꺼이 안아 주는 성현이와 지은이에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황종연 교수님의 ‘무엇이 너에게 글을 쓰게 했니’라는 강렬한 질문과 어린 시절 김은경 선생님의 ‘글을 쓰는 사람은 적어도 괜찮은 어른이 될 거야’라는 두 마디였다. 그 말들이 나를 살렸다. 마지막으로 이런 초라한 작품을 읽어 주신 것만으로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새해에는 소원이 한 가지다. 아픈 가족이 있기에 더욱 절실히 바란다. 완전한 세계에서 살 수 없지만, 모두가 조금 더 안전한 세계에서 살 수 있게 되기를. 그 힘없는 말을 소리 내어 말해 본다.

△1993년 대구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재학



● 심사평

삭막한 세상에 따뜻한 희망으로 읽혀


올해 본심에 진출한 8편의 작품에는 동물과 사물이 소설의 주요한 요소와 소재, 상징으로 등장했다. 껌, 악어, 햄버거, 고물차, 비둘기, 고양이, 코뿔소 등 양태도 다양하여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광맥을 찾아 맹렬히 탐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정희 씨(왼쪽)와 성석제 씨.
오정희 씨(왼쪽)와 성석제 씨.
‘브루클린 햄버거’는 마약 때문에 진 빚 때문에 죽임을 당할 사람의 개를, 마약공급자의 빚을 대신 받으러 간 ‘나’가 데리고 오는 이야기다. ‘나’는 곧 죽을지도 모를 사람, 곧 개 주인보다는 금명간(今明間)에 주인을 잃을 개에게 더 큰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더 이상의 서사적 진전이 없다는 약점을 빼고 보면 사람의 삶과 죽음을 너무도 가볍게 치부하는 이 소설의 상황이 실제의 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유하는 사람들’에는 자살을 하러 텅 빈 문화회관을 찾아드는 비둘기를 매일이다시피 자루에 수거하는 청년 비정규직 경비원 ‘나’가 등장한다. 다만 이 소설은 ‘비둘기가 자살하러 가는 현존의 사실’과 인물, 공간,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이야기의 선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당선작인 ‘폐차’는 질척하고 차가운 눈밭 같은 세상 속에서 폐기되어 가고 있는 듯한 존재들을 조명한다. 폐차 직전의 고물차에 치여 트렁크에 실린 고라니가 우리 사회의 무고한 약자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동토의 한파 속에서 별빛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형제애와 부자의 결속,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의 온기가 삭막한 이 시대의 희망처럼 읽힌다.
 
오정희·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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