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영토 넓혀 세계 1~4위 휩쓸어… 글로벌시장 호령하는 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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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금융이 강한 경제 만든다]1부 손발 묶인 ‘걸리버 금융’
<3>한국 금융도 몸집 키우자

《 한국 금융엔 ‘삼성전자’가 없다. 경제 규모 12위의 강국이지만 세계 50대 은행에 국내 금융사 1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정부의 규제와 무관심, 금융사들의 보신주의 속에 한국 금융은 성장을 멈췄다. 국내에선 골목대장 노릇을 하지만 세계 무대에선 구멍가게 수준이라 굵직한 프로젝트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반면 세계 각국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금융의 몸집을 키우고 있다. 한국도 ‘금융의 삼성전자’를 키우겠다는 의지와 전략이 필요하다. 》
 
“유럽 최대 은행인 스페인 산탄데르의 시가총액이 미국 JP모건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 ‘범유럽 차원의 대형 은행’이 필요하다.”

올해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 춘계회의에 참석한 유럽연합(EU) 주요 은행장들의 화두는 ‘은행 대형화’였다. 이들은 미국 은행과의 격차가 갈수록 커져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유럽에선 은행들의 합병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독일은 자국 기업을 세계 시장에서 지원할 튼튼한 은행이 필요하다며 1, 2위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스와 스탠다드차타드, 이탈리아 우니크레디트와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의 합병설도 나오고 있다.

○ 금융영토 넓혀라…대형화 속도 내는 해외 은행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 시장에서 아웅다웅하며 이자 수익에 안주하는 한국 금융사들과 달리 세계 각국의 주요 은행은 적극적인 M&A와 해외 진출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 창출 능력을 키우고 중복 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해외 사업을 축소한 공백을 틈타 중국, 일본 은행들은 꾸준히 금융영토를 넓히며 덩치를 키웠다.

중국은 영국 금융전문지 더뱅커가 7월 발표한 ‘세계 100대 은행’에서 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은행, 중국농업은행 등 4곳이 1∼4위를 휩쓸었다. 규모를 키운 이 은행들은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경제영토 확장 프로젝트) 정책에 따라 아시아를 넘어 유럽, 아프리카까지 공략하고 있다. 단순한 몸집 불리기에 그치지 않고 투자은행(IB), 자산관리, 무역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아가며 월가를 위협할 정도다.

일본의 ‘3대 메가뱅크’는 저금리, 저성장, 고령화로 수익성이 나빠지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미쓰비시도쿄UFJ금융그룹(MUFG)은 2008년 미국 유니언뱅크, 2013년 태국 아유디야은행, 지난해 인도네시아 다나몬은행 등을 사들이며 해외 수익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렸다.

○ 미국 IB들 ‘월가의 구글’ 선언

세계 금융투자업계를 선도하는 미국 IB들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몸집을 키워 왔다. 최근에는 스스로를 ‘금융회사가 아닌 정보기술(IT) 회사’라고 자처하며 ‘월가의 구글’로 변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15년 제너럴일렉트릭(GE)의 온라인은행 부문을 인수하는 등 최근 5년 새 150여 개 IT 회사를 인수했다. JP모건 역시 지난해 미국 온라인 결제서비스 ‘위페이’를 인수하며 핀테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구글의 인공지능(AI)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올해 IT 분야에만 108억 달러(약 12조 원)를 투자했다.

최고경영자(CEO)가 장기 비전과 철학을 펼칠 수 있는 것도 미국 초대형 IB의 혁신 동력으로 꼽힌다. 2005년 CEO에 오른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올해 초 임기를 5년 연장했다. 국내 금융사 CEO 임기가 평균 2, 3년에 그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 “대형화-질적 성장 동시 추구”

해외 금융사들이 대형화만 추구하며 마구잡이 확장에 나선 것은 아니다. 주요 금융사들은 장점에 집중해 특화 영역을 육성하고, 장기적 안목의 해외 진출을 통해 규모와 효율성을 함께 키우고 있다.

2013년 미국에 진출한 스페인 산탄데르는 스페인계 외에도 미국 백인 중산층 고객을 공략해 입지를 넓혔다. 올해 6월 말 현재 지점 600곳, 자산 745억 달러, 고객 2100만 명을 보유한 미국 소매금융의 강자로 부상했다. 산탄데르도 1990년대 이후 100건이 넘는 M&A를 통해 성장했지만 개인 소매금융에 집중하고 중남미 시장에서 역량을 쌓은 뒤 선진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호주 맥쿼리그룹은 인프라 투자라는 틈새시장에 역량을 집중해 세계 일류 금융사의 반열에 진입했다. 최근엔 신재생에너지까지 투자 영역을 넓혔다. 지난해 영국 정부 산하 녹색투자은행(GIB)을 인수한 뒤 아시아 지역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뛰어들었다. 맥쿼리 인프라펀드 규모는 2001년 말 40억 달러에서 올해 3월 말 1190억 달러로 급성장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는 “글로벌 금융사들은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 금융도 이런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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