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걸크러시]〈7〉한라와 금강을 정복한 여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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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탐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의 물을 떠 올렸다. 이제 또 금강산까지 두루 구경했으니, 삼신산(한라산, 금강산, 지리산) 중에 그 둘은 네게 정복된 셈이다. 천하의 수많은 남자 가운데 이러한 자가 있겠느냐?”

―채제공의 ‘만덕전’

18세기를 살다간 한 여성이 있었다. 어려서 부모와 이별해 관비로 전락한 후 기적(妓籍)에 올라 기생이 됐다. 이후 상업적 능력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자수성가한 여성 사업가가 됐고 흉년에 자신의 재산을 털어 굶주린 백성들을 살려냈다. 이 일이 정조에게 알려지면서 그는 왕실로 초대돼 조선시대 제주 여성으로는 최초로 한양과 금강산을 유람한다. 그리고 당대 수많은 선비들과 고위 관직자들에게 의로운 여성이란 칭송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삶이 기록되어 역사에 남게 된다. 이처럼 파란만장했던 삶의 주인공은 바로 김만덕이다.

대부분 기록에서 그는 의협심이 강한 여성으로 등장한다. 특히 정조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은 서준보의 ‘만덕전’은 그를 뛰어난 상인 목록에 올려야 할지 아니면 의협심이 강한 여성 목록에 올려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끝을 맺을 정도였다. 관비에서 기생을 거쳐 성공한 여성 사업가, 국왕과 국가가 인정한 의로운 여성이라는 최고의 명예를 얻고 금강산 여행까지 다녀온 그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해서일까. 2010년 모 방송사에서 그의 삶을 다룬 드라마가 제작됐으며 꽤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의 경쟁력은 외모와 기예가 아니라 긍정적 성격과 적극적 삶에 있었다. 이희발과 김희락은 만덕의 용모가 그리 아름답지 않았으며 천성적으로 가무를 좋아하지 않아 노래와 춤도 잘하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심지어 그는 2개의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라는 소문이 있어서 정약용이 직접 만나 확인한 후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재채는 만덕이 예쁘지 않았는데도 재산을 보고 많은 남성들이 접근했다는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성격은 무척이나 활달해 이가환이 환송시에서 ‘예순 나이 마흔쯤으로 보이구료’라고 표현할 정도로 젊게 살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경하고 의로운 행동을 칭찬했다.

그는 뛰어난 여성 사업가였다. 해양운송업에 능했으며, 한양과 제주의 물가 변동을 분석해 상품 거래의 시점을 정했다. 제주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상품이 쌀과 양곡임을 간파해 육지에서 구매해 제주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제주의 특산물을 육지에 팔아 많은 부를 쌓았다. 특히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재산을 지역사회로 환원해 위기를 극복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는 등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했다.

그는 자아가 강했으며 성품이 호탕한 여인이었다. 항상 장부의 뜻을 품었고, 남성들을 직접 고용하면서도 혼인하지 않았다. 험난한 삶에서도 여인의 따분한 기질을 버렸다. 선행의 대가로 정조가 소원을 물었을 때 신분 상승이나 면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박제가는 “여성이라는 운명에 항거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고 떠나는 순간까지 넉넉하게 멋쟁이로 살았던 귀한 사람”이라고 했다.
 
강문종 제주대 교수
#만덕전#여성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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