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침묵을 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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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법 시행 2년 지났지만 북한인권재단은 출범도 못해
北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문제
김정은 이후 생명권침해 늘었는데 남북관계에 집착해 외면해서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대한변호사협회가 어제 ‘2018 북한 인권 백서’(제7집) 발간 기념 보고회를 개최했다. 북한 인권 현황을 점검하고 급변하는 남북 관계 속에서 개선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변협은 2006년부터 북한 인권 정책과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한 ‘북한 인권 백서’를 발간해 왔다. 이번에는 급진전하는 남북협상 과정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 등이 임박한 상황이라 관심이 컸다.

변협은 9월 3일에도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시행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인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법정 필수기관인 북한인권재단이 구성조차 되지 못한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북한인권법상 재단은 통일부 장관이 추천한 2명과 국회가 추천한 10명 등 12명의 이사가 운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회 추천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재단에 예산이 배정되었지만 집행할 이사회가 구성되지 않아 북한 인권 실태 연구·용역이나 조사, 북한 인권단체 지원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직결된 주요 현안이다. 유엔은 2005년 이후 매년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왔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북한 인권특사 임명과 탈북자 지원과 대북제재 조치를 규정한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 방문 중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굉장히 중요하다. 북한도 보편적 인권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렇지만 화해 분위기 조성과 비핵화를 통한 평화 정착을 목표로 남북미 간의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미묘한 측면이 있다. 국가 간의 문제든 개인 간의 일이든 마주 앉아 협상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심각한 약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다. 해결의 방법론이 다를 수도 있다. 북한을 계속 압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고, 북한 개방과 경제 개발 지원이 효율적이라는 입장도 있다.

작금의 남북 대화와 평화 정착이 민족의 명운을 좌우할 중요한 문제이고 반드시 성공해야 할 당위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인권 문제를 가급적 거론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협상에는 다양하고 예측 불허의 측면이 있으며 미리 온갖 카드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역사적 교훈이다.

정부가 대북 협상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북한 인권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북한인권재단 준비 사무실을 폐쇄했다거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용인 법무연수원 분원으로 옮기며 검사 정원까지 줄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법무부는 “청사가 협소해 부득이하게 보존소를 옮기게 된 것이지 북한 인권을 홀대한다거나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이 같은 상황은 미국도 비슷한 것 같다. 이달 16일 미국 의회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북한과의 협상에 인권 문제를 포함시키고 줄곧 공석인 북한 인권특사 임명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북한과의 비핵화 합의에 인권지표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합의의 성공을 촉진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북한이 대화에 나섰다고 해서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이 나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북한 인권정보센터가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김정은 집권 이후 생명권과 피의자 및 구금자 권리 침해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북한인권법은 정부에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은 물론 ‘남북 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과 남북 인권 대화 추진 및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북한인권법이 정상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의무가 있다. 만일 현재 상황에서 법률에 문제가 있고 남북 대화에 걸림돌이 된다면 개정 등 조화로운 법제적 해결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법이 오히려 남북 대화의 성공을 보장하고 촉진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나아가 국회와 정부의 분발을 촉구한 변협의 최근 활동에 경의를 표한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북한인권법#북한인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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