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광영]여자는 공중화장실에서 ‘이상 무’ 3번 속삭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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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남자는 알 길이 없는 여성들의 공중화장실 이용법. 화장실에 들어섬과 동시에 문 잠긴 칸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모두 비었음. 이상 무.’ 빈칸에 들어갈 땐 카메라에 얼굴이 찍힐까 봐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다음엔 휴지통 발로 차기. ‘달려 있는 거 없음. 이상 무.’ 이어 동서남북 벽면을 살핀다. 구멍이 보이면 틀어막는데 쓸 호신용 스티커를 손에 쥐고. 다행히 ‘구멍 없음. 이상 무.’ 비로소 앉는다. 눈은 ‘몰카’ 렌즈를 찾아 계속 움직인다.

밤에 택시를 탄 여성은 홀로 스릴러 영화를 찍는다. 남자 운전사가 평소 가던 길로 안 가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도망쳐야 할 것 같아 신호 정지 때마다 택시 문고리를 잡았다 놓는다. 귀갓길 낯선 남자가 뒤따라오는 느낌이 들 때면 휴대전화를 보는 척 걸음을 멈춘다. 남자가 지나가야 다시 발걸음을 뗀다.

엘리베이터에 남자와 단둘이 탔을 땐 얼어붙는다. 남자가 내리기 전까지 집 층수를 누르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타지 말걸’ 후회가 밀려온다. 치킨 주문도 용기가 필요하다. 배달원 도착 전 집 현관에 남자 신발을 갖다놓는다. 여자 혼자 산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 아예 1층으로 내려가 받는 날도 있다. 따끈따끈한 치킨을 베어 물면서도 신경이 쓰인다. 주문할 때 남겨진 휴대전화 번호로 이상한 문자가 날아들진 않을까.

여성의 하루는 이런 ‘돌다리 두드리기’의 연속이다. 여자라면 거의 누구나 의식하지만, 남자라면 거의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다. 위험은 남녀에게 불평등하다. 그걸 알면서도 약한 자의 숙명이라고 남자는 당연시하고, 여자는 체념해왔다.

이 오랜 관성을 더는 못 참는다는 울분이 최근 혜화역 시위에 여성 6만 명(주최 측 추산)을 불러 모았다. 안전에 관해서도 남녀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다는 자각은 1020 ‘영(Young)페미니즘’의 눈에 띄는 특징이다. 딱딱한 담론이 아닌 당장의 절실한 일상 문제다. 폭발력이 셀 수밖에 없다.

‘한남충(한국남자 벌레)’ 같은 남성 혐오 표현에는 적대감 못지않게 절박감이 엿보인다. 여성들의 날 선 언어에는 위협적인 존재를 향해 강하게 말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공포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고 싶은 간절함이 배어 있다. 혜화역 시위는 각자 짊어져 온 두려움을 결집해 자신감으로 바꾸는 장이었다.

천주교 성체 훼손, 남성 누드 사진 유출 등 워마드의 극단적 행태 이면에는 다른 가치관이 설 자리가 없을 만큼 강력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예수도, 어린이도, 난민도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경계한다. 피해의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여자로 살아보지 않은 남성들이 피해와 피해의식의 경계를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

얼마 전 법정에서 난민을 돕는 20대 여성 통역사를 본 적이 있다. ‘난민 불인정 처분이 잘못됐다’며 무슬림 남성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판사에게 전하던 그의 표정은 간절해 보였다. 그런데 통역사는 재판 뒤에도 한참 동안 텅 빈 방청석에 혼자 있었다. 자신이 통역했던 난민들이 모두 법원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남자인 난민들이 “물어볼 게 있다”며 다짜고짜 연락처를 달라고 조르거나 무작정 뒤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공포는 그 어떤 대의명분보다 절실하다.

다만 갈수록 격렬해지는 ‘남혐’ 움직임이 우려된다. 혐오는 껍데기만 거칠 뿐 상대가 귀를 닫으면 그만이다. 남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니 역설적으로 온건한 투쟁이다. 오히려 남성들을 분열시켜 포섭하는 게 위력적일 수 있다. 남성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 공감 세포를 자극할 약한 고리가 적지 않다. ‘너희도 우리와 똑같이 당해보라’는 겁박보다 ‘이러면 아프지 않겠느냐’는 설득 앞에서 ‘한남충’은 더 초라해진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여성#혜화역 시위#영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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