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부동산 세제, 중국식 vs 미국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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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취득세, 미국은 보유세 중심
경제개발 주택공급에는 취득세 효과적, 유지비 중요해지면 보유세 더 유용해
세제개편안은 여전히 방향성 불분명… 지속가능한 틀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중국인들 중에는 중국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 모습으로 당나라를 꼽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당은 강성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제국이었다. 당나라 초기의 국력을 뒷받침했던 토지제도는 균전제(均田制)다. 이 제도는 원래 중국 북방의 북위(北魏)가 지대 수탈을 피해 떠돌던 유민들에게 ‘가족 수에 따른 토지 분배’를 실시하며 시작됐다. 국가는 15세 이상 남녀 1인당 일정 면적의 토지를 지급했고 70세가 되거나 사망하면 이를 회수했다.

균전제는 당나라 중엽에 관리들이 부패하고, 음성적 토지 매매와 대토지 소유가 늘면서 붕괴했다. 인구가 늘어 나눠 줄 국유지가 고갈되자 균전제의 물적 기반이 사라졌고, 땅이 귀해지자 사람들의 토지 사유 욕망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후기 당나라는, 토지 사유화는 인정하되 토지·재산에 매년 두 번 과세하는 양세법(兩稅法), 즉 재산세를 시행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빈곤층에 부담을 주는 소금 소비세에 주로 의존해 세수를 충당하게 됐다. 결국 당 제국은 산둥(山東)의 소금 밀매업자였던 황소(黃巢)의 난을 겪고 멸망했다.

중국 역사상 수많은 농민봉기가 균전을 기치로 내걸었다. 조선에서도 중종 때 조광조가 이를 도입하려다 실패했다. 국가가 땅 사용권을 나눠 주는 방식은 원초적 호소력이 있다. 현재 중국의 토지제도도 유사한 면이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주거용지에 대해 70년간 사용권을 준다. 연장도 가능하다. 단, 도시 기반시설을 만들 돈이 필요하니 사용료 명목으로 일시금을 받는데, 이것이 땅 시세보다 저렴하다. 보유세도 없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좋은 땅을 분양받는 것이 특권이 되고, 사용권을 얻은 이는 이를 시장에서 임대하거나 처분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균전의 사상이 시장의 힘 앞에서 특권 잔치가 되는 셈이다. 사용권을 시장에서 매입할 땐 계약세가 3∼5%고, 양도소득세율은 공제 초과분에 대해 30∼60%다.

반면 미국에선 주마다 다르지만 주택의 경우 시가의 1∼2%를 매년 보유세로 낸다. 5억 원짜리 집에 600만 원 정도다. 취득세는 거의 없고, 양도소득세는 공제 초과분의 10∼40% 정도지만 더 비싼 집으로 옮길 땐 유예해주기도 한다. 저렴한 공공 임대주택은 곳곳에 있지만 국가가 싼값에 집을 분양하는 일은 보기 어렵다.

우리 시각으로 단순화하면 중국식은 ‘취득세(일시금 사용료) 중심’, 미국식은 ‘보유세 중심’이다. 장단점이 있다. 경제 개발과 주택 공급에는 취득세가 효과적이다. 정부는 취득세를 목돈으로 받아 인프라 건설에 충당하고, 낮은 보유세로 높은 지대를 보장해줘 민간 자금도 끌어들인다. 집 구매자 입장에선 취득세가 비싸도 보유 비용이 낮고 정부가 공공투자로 취득세 이상 땅값을 올려주니 집이 좋은 투자 수단이다. 그러다가 소득 대비 집값이 너무 올라 젊은 세대의 원성이 커지면 새 택지를 싸게 분양해 집주인 대열에 동참시켜 주면 된다.

그러나 국가가 새로 공급할 토지가 고갈돼 무주택자에게 개발 이익을 나눠 주기 어렵게 되고, 도시 및 국가 인프라가 갖춰져 매년 나가는 유지비가 중요해지면 취득세보다는 보유세가 유용하다. 취득세가 미래 보유세 해당분을 일시금으로 받은 것이라고 보면, 저성장·저금리로 갈수록 과거에 받은 취득세의 미래가치가 줄어드니 보유세가 안정적이다. 또 땅에서 보유세 이상의 가치와 효용을 얻는 사람만이 땅을 소유하려 할 것이므로 땅의 이용 효율도 높아진다. 돈 쏠림이 줄어 집값이 연 소득의 몇 배 이내에서 안정되면 ‘로또 분양’ 없이도 젊은이들 스스로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집값이 안정되면 보유세 부담도 준다. 속성 개발에는 취득세가 나을지 모르지만 시장친화성, 공정성, 지속가능성 면에선 보유세가 우월하다.

만약 당나라가 선진 세제였던 토지자산세를 적절히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중국은 보유세를 일부 지역 고급주택에 시범 적용하며 전면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을 보면 한국의 부동산 세제는 어디로 가려는지, 현상 유지를 하려는지 불분명하다. 개발시대의 틀을 벗고 지속 가능한 틀을 만들지 않으면 지대 추구의 덫을 빠져나올 수 없는 막다른 상황이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부동산 세재#취득세#보유세#세제개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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