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승옥]국가 목청껏 부르면 이긴다, 아이슬란드의 기적은 ‘열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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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역시나 축구공은 둥글고, 피파 랭킹은 숫자에 불과한 모양이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개최국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5-0으로 대파하면서 이상 조짐을 보이더니, 아이슬란드가 아르헨티나와 비기고, 일본이 콜롬비아를 꺾었다.

월드컵의 이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축구는 승부와 관련된 요인이 많고, 상호작용이 아주 복잡하다. 국가 간 총성 없는 전쟁으로 묘사되는 월드컵은 여기에 더 많은 변수가 개입된다. 예측하기 더 어렵다. 그래서 문어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내세워 점을 치기도 하고,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모두 똑 떨어지진 않는다.

그렇다고 예측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는데, 최근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선수들이 국가(國歌)를 부르는 걸 보면 승패를 예측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영국 스포츠과학자와 심리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201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의 승패를 분석했더니, 자국 국가를 더 크고 기쁘게 노래한 팀의 승리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국가를 부르는 모습(목소리 크기, 표정, 몸짓)은 자신들의 팀(국가나 민족)에 대한 ‘열정’의 표현이고, 그 열정의 크기가 승부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바로 아이슬란드다. 유럽의 변방인 아이슬란드는 월드컵에 처음 출전했는데, 첫 상대인 강호 아르헨티나와 1-1로 비기는 파란을 일으켰다. 아르헨티나는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팀이다. 아이슬란드는 인구 34만 명의 작은 나라다. 인구만 놓고 보면 서울 도봉구 수준이다. 프로 선수는 1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표팀 감독은 치과의사, 골키퍼는 영화(광고)감독, 수비수는 소금 포장공장 직원이다.

2년 전 유로 2016 대회에서부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아이슬란드는 자신들의 저력을 열정에서 찾고 있다. 아이슬란드축구협회 측은 “우리 선수들은 슈퍼스타가 아니다. 그래서 겸손하고, 돈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순수한 열정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메시를 꽁꽁 틀어막은 수비수 사이바르손 역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뛴다”고 밝혔다. 실제 아이슬란드 선수들의 움직임은 열정이 충만해 보였다.

국민들의 응원도 큰 역할을 했다. 아르헨티나와 대결 당시 아이슬란드 내 TV 순간 시청률은 무려 99.6%로 집계됐다. 또 러시아까지 날아가 응원한 사람은 3000명이나 됐다. ‘겨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다. 북이 두 번 울리면 손뼉을 치면서 “후!”라고 외치는 바이킹 천둥 박수. 그 위압적인 기운은 선수들에게 엄청난 힘을 불어넣었다. 그들은 그렇게 열정을 모아 명승부를 연출했다.

우리나라는 스웨덴과 첫 경기에서 무기력하게 패했다. 아이슬란드의 반대 사례였다. 불협화음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선수 간 신뢰가 좋지 않았고, 주장인 기성용이 공개 한탄할 정도로 선수단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국민들도 월드컵 직전까지 냉담했다가 패배 뒤에는 비난에 집중했다. 선수들은 과한 욕을 먹고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한 경기 치렀을 뿐이다. 연구 결과대로 열정의 크기가 승부를 지배한다면 우리도 아이슬란드처럼 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실제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번 멕시코전. 선수들은 애국가를 크고 기쁘게 노래하고,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쳐보자. 그리고 기적을 기다려보자.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2018 러시아 월드컵#아이슬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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