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놀토’ 정착에 7년, ‘저녁 있는 삶’은 3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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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불과 14년 전인데 지금 학교에 다니는 세대나 신입사원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2004년 7월 1일 주 5일제가 실시됐다. 법정근로시간이 주 44시간에서 40시간(야간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 허용해 총 68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공무원과 예나 지금이나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은행권, 종업원 1000명 이상의 비교적 큰 기업들이 먼저 토요 휴무를 실시했다. 학교가 그 뒤를 이어 2005년부터 매월 넷째 주 토요일이 노는 토요일인 ‘놀토’가 됐다. 2006∼2011년에 2, 4주 격주로, 2012년부터는 매주 토요일로 확산됐다. 무려 7년 걸린 공사다.

주 5일제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변화는 엄청났다. 관광 레저산업이 활성화되고 근로자들의 삶에도 여유가 생겼다. 소득도 크게 줄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이제 주 5일제를 넘어 주 52시간제가 열흘 뒤인 다음 달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작된다. 2021년 7월에는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실시 3년 만에 전체 근로자의 80% 이상에게 적용되는 셈이다.

경영계의 반발은 예상된 일이다. 반발 내용도 14년 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장에 따르면 주 5일제로 연월차수당 등을 합치면 20% 이상의 임금 인상 효과, 기업으로서는 그만큼의 부담이 생긴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추가 인건비 부담이 연간 19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번에도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연간 12조3000억 원의 기업 부담이 추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공장이 중국 등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분석도 그때와 비슷하다.

그렇다고 정부와 노동계의 당시 주장이 옳은 것도 아니었다. 주 5일제를 도입하면 일하는 시간이 줄어 이를 메우기 위한 일자리가 68만 개까지 늘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정민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04∼2009년 1인당 주당 실근로시간은 43분 단축됐고 고용률은 오히려 2.28% 떨어졌다. 이번에도 기업 부담은 5조 원에 그치는 반면 일자리는 12만∼16만 개 정도 늘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진실은 경영계와 노동계의 주장 가운데 어디쯤 있을 것이다.

최근 참석한 한 토론 모임에서 대형 로펌의 노동법 전문 변호사가 주 52시간 강제 단축이 자칫 ‘산업현장의 세월호’가 될지 모른다고 비유한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연봉 6000만∼7000만 원 넘어가는 상대적 고소득층이야 소득이 조금 줄더라도 여유 있는 삶을 선호하겠지만 아이들 학원비도 겨우 내고 있는 그 이하 소득계층에서는 투잡족으로 나서거나 외벌이가 맞벌이 부부로 나서지 않을 수 없고, 낯선 작업장에서 산재가 자주 발생했다는 과거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엊그제 다급해진 경총이 6개월을 계도기간으로 달라고 요청했고, 어제 당정청회의에서 6개월의 처벌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열흘 후 곧바로 적용되는 대상은 주로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들이다. 진짜 문제는 중소기업과 소속 근로자들이다. ‘놀토’도 7년의 준비 끝에 7년의 연착륙 과정을 거쳐 정착됐다. 근로시간 단축의 근본 취지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너무 급하게 달려왔으니 이제 좀 천천히 가자는 것 아닌가. 급성장에 따른 부작용을 고치자면서 그 과정이 또 너무 급해서 또 다른 부작용이 터져 나와서야 되겠는가.

김광현 논설위원
#주 5일제#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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