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은 회의적… 여가시간 ‘소확행’에 빠진 직장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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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주 52시간’ 한달 앞으로
학원-헬스클럽-문화센터등서 자기계발-취미생활 준비 늘고
정기적 사회봉사 활동 계획도
“큰 비용 투자 없이 자기만족 느낄 ‘소확행’ 현상 더욱 뚜렷해질 것”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평일의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지면 많은 직장인이 작지만 확실한 자기만족을 찾을 수 있는 취미 활동이나 자기 계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일보DB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평일의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지면 많은 직장인이 작지만 확실한 자기만족을 찾을 수 있는 취미 활동이나 자기 계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일보DB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자기 계발이나 취미 생활을 준비 중인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다. 일시적으로 주어진 여유가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된 여유인 만큼 자신이 확실히 좋아하는 활동에 계획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려는 것이다.

반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 축소로 여가를 즐기기는커녕 오히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것이라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여기에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정부 예측과 달리 신규 고용을 검토 중인 기업은 많지 않아 산업 경쟁력만 훼손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 여유 시간을 발전의 계기로

정보기술(IT) 관련 대기업에 다니는 최인제 씨(41)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식으로 시작되면 ‘북한 스터디 모임’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평소에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데다 최근 남북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면서 체계적으로 북한 관련 공부를 해둘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최 씨는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현 시스템대로라면 주말에만 모임이 가능하겠지만 앞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평일에도 모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김석철 씨(55)는 은퇴 후를 고려해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강의를 듣고 있다. 김 씨는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힘들지만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퇴근 후 공부할 시간이 늘어날 것”이라며 “7월 이후 학원에 다니려고 알아보는 동료가 많다”고 전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늘어난 여가 시간을 자기 계발용으로 활용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외국어나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학원, 헬스클럽, 백화점 문화센터 등은 ‘특수(特需)’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특히 학원시장은 직장인 수강생이 대거 몰리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온라인 강좌를 강화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산한 모습이다. 자격증 시험 전문학원 에듀윌 측은 “올해 들어 학원 야간반과 온라인 수강 문의가 지난해에 비해 약 30% 늘었다”며 “향후 근로시간 단축이 확대되면 이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취미-봉사활동 활발해질 듯”


건설회사 관리업무팀에서 근무하는 윤모 씨(40)는 최근 들어 시간이 날 때마다 프라모델 판매 온라인 사이트를 검색한다. 프라모델 도색용 페인트는 이미 구입했다. 또 자유롭게 미술·공작 활동을 할 수 있는 공방에도 등록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윤 씨는 “대략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퇴근 뒤 두세 시간씩 공방에서 프라모델을 조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사회봉사 활동을 계획하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백모 씨(42)는 일주일에 한 차례 저소득층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영어 공부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백 씨는 “어려운 여건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해외여행도 못 가고, 학교 밖에서는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하기 어렵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며 “나이가 들면 꼭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사회봉사활동을 하려고 했는데, 지금이 시작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이른바 직장인들 사이에서 ‘소확행’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작지만 분명한 자기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취미와 사회봉사 활동에 나서는 직장인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도

일부 직장인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오히려 근무 환경을 더 열악하게 바꿀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짧아지지만 업무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많다. 제약사에 근무하는 회사원 이모 씨(39)는 “회사가 파격적으로 인원을 더 채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업무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며 “퇴근한 뒤 집에서 숙제하듯 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선 근무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들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퇴근 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투잡(two job)족’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이세형 turtle@donga.com·황태훈 기자
#근무시간 단축#문재인 정부#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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