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우선]‘내신 전쟁터’에 내몰린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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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요즘 대치동은 분위기가 어때요?”

“내신에 ‘올인’이죠 뭐. 지금 믿을 건 내신뿐이잖아요.”

최근 입시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빠지지 않고 내신 얘기가 오간다.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생부종합전형을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1년째 흔들기만 하는 사이, 내신은 입시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위치에 올랐다.

현재 우리나라 학생들이 대학을 가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가 학교 시험성적(내신) 위주로 가는 ‘학생부교과전형’(41.5%), 또 하나가 내신에다 교과 외 활동까지 보는 ‘학생부종합전형’(24.4%), 마지막이 ‘수능’(20.7%)이다. 선발 비중이 가장 높은 데다 정부가 유일하게 손을 안 댄 안전한 전형이 교과전형이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들은 어떻게든 내신 따기에 전력 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교과전형은 얼핏 보면 제법 괜찮은 선발 방식 같다. 학교 시험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받은, 성실하고 우수한 학생을 뽑는 전형이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좋아한다. 학교 시험은 교사가 출제권을 가진 데다 학종에 비해 이것저것 써줘야 하는 부담도 적어서다.

하지만 학창시절 공부를 좀 해본 사람이라면 내신시험이야말로 진짜 아이들을 ‘미치게 하는’ 경쟁이란 것을 안다. 철마다 돌아오는 중간·기말고사 때마다 학생들은 피가 마른다. 지금까지 잘 달려왔다 해도 한 번의 고사, 한 과목이라도 망치면 내신으로 원하는 대학 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한 문제에 죽고 사는 판인데 ‘창의적인 발상’, ‘남과 다른 도전’을 했다가는 필패(必敗)로 가는 특급열차를 타게 된다.

내신 경쟁은 아이들을 몹시 치졸하게 만들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친구들과 달리는 ‘전국구 시험’인 수능과 달리 내신은 당장 내 옆자리 친구, 내 옆 반 학생을 이겨야만 한다. 제 아무리 교육과정을 바꾸고 과정 중심 평가를 해도, 이런 전쟁에서 ‘친구와의 협업’ 같은 건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소리다.

수능도 출제 수준이 낮다는 비판을 받지만 내신 문제 수준은 그보다도 더 낮은 편이다. 문제집에 있는 문제를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출제하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전혀 가르치지도 않은 어려운 문제를 내고 손쉽게 학생을 줄 세우는 교사도 있다. ‘고난도 선행 문제’가 섞여 나오는 상황에서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힘들다. 학생들이 내신 관리를 위해 학원을 찾는 이유다.

그럼에도 올 초 교육부의 한 간부는 “학교 시험에서 가르치지도 않은 문제를 내는 그런 간 큰 교사가 있냐”며 “나도 한때 교사를 했지만 그런 선생님은 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들은 ‘다른 별’에 사는 걸까.

교육부의 현실 인식이 이상주의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요즘 학원들은 ‘학교별 과목별 맞춤형 내신 관리’를 내걸고 과거보다 더 세분화된 형태의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3, 4명에서 많게는 7, 8명의 소그룹 규모로 학원비는 비쌀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 등 교육특구 지역의 일부 강좌는 이런 내신 대비반의 과목당 강의료가 1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마치 마트의 ‘3+1 행사’처럼, 국영수 세 과목을 한 학원에서 들으면 300만 원에 사회탐구나 과학탐구까지 끼워주는 경우도 있단다. 학원가 한 관계자는 “우리도 ‘이게 다 뭔 짓인가’ 싶다”고 말했다.

오늘도 아이들은 수십만, 수백만 원을 지불하며 학교 시험을 위해 학원으로 간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 모든 교육 개혁이 교육부와 학원연합회의 ‘짬짜미’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학교 교육과 입시의 전체 틀을 종합적으로 길게, 현실적으로 보지 않은 교육 개혁의 그늘이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대학수학능력시험#내신#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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